“세액공제 하면 뭐 하나” 높은 최저한세율에 빛 바랜 정부의 기업 지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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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세제 혜택과 상관없이 고정된 최소 법인세율
리쇼어링 위해 세액공제 혜택 늘린다지만, 효과는 미미
최저한세율 조정 필요, 글로벌 수준까지 낮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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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저한세에 가로막혀 정부의 세제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기업이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났다.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해 반도체 등 첨단 기업의 국내 투자를 촉진하려는 정부의 시도가 정작 기업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셈이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최저한세율이 글로벌 수준에 비해 높은 점을 지적하며 비율 조정 등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최저한세로 인해 무용지물 된 세액공제 혜택

23일 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반도체·백신·이차전지·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기업이 국내에 시설 투자할 경우 15~25%가량 세금을 깎아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K칩스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기업에 적용되는 최저한세 기준이 높아 지원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최저한세는 시설 투자 세액공제 등을 비롯해 정부가 법인세를 깎아주더라도 반드시 내야 하는 최소한의 세금을 뜻한다. 현재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최저한세율은 ▲과세표준 100억원 이하 10% ▲100억원~1,000억원 이하 12% ▲1,000억원 초과 17%이며, 중소기업은 일괄적으로 7%가 적용된다. 예컨대 과세표준 1조원인 대기업이 현행 법인세 최고세율 24%를 적용받아 산출 세액이 2,400억원으로 나왔고, 디스플레이 시설투자로 1,000억원의 세액공제를 받는다면 최종적으로 납부해야 할 세금은 1,400억원이 된다. 하지만 이 기업에 대기업 최저한세율인 17%를 적용하면 세액공제를 받았음에도 내야 할 법인세가 1,700억원이 되므로 300억원만큼의 세금 혜택은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최저한세에 가로막혀 정부 세제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기업은 올해 역대 최대로 집계됐다. 22일 국세청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법인세를 신고할 때 최저한세를 적용받는 기업은 지난해 6만7,272곳으로 1년 새 30.5%나 상승했다. 이중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1,188곳으로 16% 늘었으며, 중소기업은 6만6,084곳으로 30.8%가량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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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전경/사진=삼성전자

투자 효과 극대화 위해선 최저한세율 낮춰야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기업의 속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세액공제 혜택 등을 제공해 반도체 등 첨단 기업의 국내 복귀(리쇼어링)와 국내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만료되는 국가전략기술 투자 세액공제와 관련해 “법의 효력을 연장해서 투자 세액공제를 계속해 나갈 방침”이라며 “국가전략기술산업의 국내 발전을 위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세액공제 혜택을 발표해도 정작 기업은 최저한세의 적용을 받아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있으나 마나 한 혜택을 주면서 기업 더러 국내로 돌아와 투자하라고 하면 어떤 기업이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최저한세 적용으로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향후 10년간 공제 혜택을 이월할 수 있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업계는 이듬해가 되면 또다시 동일한 최저한세를 적용받기 때문에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는 건 매한가지라고 반박했다. 최저한세율을 조정하지 않고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호 한국경제인협회 책임연구원은 “현행 17%인 최저한세율을 글로벌 최저한세 수준인 15% 선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저한세가 투자와 고용 유인을 낮춰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 역시 “정부가 반도체 시설투자 등을 위해 세액공제 혜택을 지속하겠다고 밝혔지만 적기에 시설투자가 단행되는 효과를 보려면 최저한세율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내려 기업들이 세액공제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