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심화에 ‘날벼락’ 맞은 주민들, ‘갈등의 중심’에 선 학교 설립·이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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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에 매몰된 둔촌주공, 학령인구 감소가 불러온 '재앙'
정부 비판론 '급증', 저출산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선
'주먹구구식 대전환'? 기반 못 닦은 정부의 '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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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주공 조감도/사진=둔촌주공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

1만2,000가구의 대단지 아파트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 파크 포레온) 내 학교 용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재건축 단지 내 예정된 학교 부지에 인근 학교를 옮겨와서 증설하자는 안이 추진되면서 주민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학교 신설이 어려워지며 벌어진 일이다. 이는 비단 둔촌주공만의 문제가 아니다. 재건축이 추진 중인 여타 단지들 또한 학교 용지를 다른 시설로 바꾸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구형 교육 시스템 전환을 이루지도 못하면서 애먼 사람들만 주먹다짐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학교 신설 두고 ‘대립각’, “사실상 정부가 책임 전가하는 꼴”

당초 둔촌주공은 단지 내 초·중학교를 신설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 2014년 8월 교육청과 조합은 이미 학교용지 기부채납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교육부가 중앙투자심사를 통해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학교 설립 수요가 없다며 돌연 초·중학교 신설이 부적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아직까지도 교육지원청이 교육부 중앙투자심사 결과를 반영한 학교 용지 세부 활용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교육지원청은 인근 한산중을 둔촌주공으로 이전 증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한산중 학군의 둔촌동, 성내동 주민과 학부모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산중지킴이’ 한 회원은 “둔촌주공에서 한산중으로 다녔는데 이제 와서 멀쩡한 학교를 왜 뺏어가냐. 도대체 학교를 왜 옮겨야 하는지 납득을 시켜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학교를 옮기면 한상중은 특정 아파트의 학교가 될 텐데, 대단지 아파트를 위해 다른 학생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거냐”고 일갈하는 이들도 있었다.

둔촌주공 분양자나 조합원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내 학교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학교 신설에 갈등이 터져 나오다 보니 당장 아이를 학교 보내야 할 학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단군 이래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둔촌주공 재건축이 학교 신설 아젠다 아래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주민들 간의 신경전은 더욱 거세졌다. 특히 학교가 가깝냐 아니냐, 즉 통학권에 속해 있느냐 아니냐는 아파트 가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흔히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라 불리는 매물이 괜히 인기 있는 게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 대한 비판론도 거세졌다. 올림픽 파크 포레온의 한 분양자는 “학령인구 감소는 나라 전체적인 문제인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결을 안 하고 그 책임을 주민들이나 (둔촌주공) 소유주들에게 전부 전가하고 있다”며 “올림픽 파크 포레온이 입주하면 학급 과밀화가 뻔하다. 모두를 위해서 학교를 증축해야 한다고 교육청과 구청, 교육지원청 등 관계기관이 지역 사회를 설득하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호소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저출산 국가 중 하나다. 20년 전만 해도 출생아 수가 40만 명대에 육박했으나, 올해는 이에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학령인구 감소가 이토록 가파르다 보니 10년~20년 전 학교용지를 확보해 둔 재건축 단지들은 비상에 걸렸다. 기부채납(공공기여)한 학교 용지에 학교를 지을 수 없게 된 탓에 재건축 사업 변경이 불가피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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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이스 홈페이지 캡처

“시스템 대전환 필요, 기반부터 닦아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갈등 상황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는 만큼, 일각에선 정부 차원의 ‘교육 시스템 대전환’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프라인 교육에서 온라인 교육으로 전환하는 등 구형 교육 시스템 전반을 재정립해 용지 활용도를 높이고 주민 간 불필요한 갈등도 줄여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미 정부 차원에서 관련 정책을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정부의 정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에선 직접적인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다. 보수적 행정이 근원적인 변화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교육부는 이미 지난 4월 디지털 교육 혁신 환경을 조성하고 학교 현장의 에듀테크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학교장터 시스템을 개편하고 제품 구분에 ‘에듀테크’ 카테고리를 신설했다. 행정안전부 고시 개정과 맞물려 학교장터 수의계약 상한 금액(추정가격 기준)도 기존 물품 7,000만원, 용역 2,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모두 상향했다.

그러나 제도 시행 반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학교장터에 올라오는 수의계약 공고는 에듀테크 소프트웨어 등 용역 기준 여전히 2,000만원 이하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그나마 5,000만원 상당 수의계약 건은 여성이나 장애인기업, 사회적약자기업에 한해 적용되고 있다. 관련 기업의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최대 1억원까지 학교장터에서 수의계약이 가능하도록 바꿨다고 했지만, 학교 행정실에선 여전히 교육부나 교육청 공문만 요구한다”며 “제도가 바뀌었지만 관행적으로 일해오던 부분에서 달라진 게 없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학교 현장에선 에듀테크 도입 절차가 복잡하고 디지털 혁신 제품이나 신기술 적용에 대한 선례가 없어 당장 적용이 어렵다는 분위기다. 시·도교육청이나 학교마다 물품 구매 시 절차나 금액 기준이 상이하다는 점도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대적인 디지털 전환을 이루기엔 여전히 기술적 기반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실제 지난 6월 4세대 나이스 시스템 오류로 인해 보안 사항에 해당하는 다른 학교 시험 정답표가 뒤섞여 출력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오류로 타 학교 기말시험 답안지가 외부에 공개된 것이지만, 당시 교육부는 마땅한 사과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부의 기술력과 책임감, 인식 등이 디지털 전환을 이루기엔 턱없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또 지난 2021년엔 한 대학생이 대학과 공공기관 정보통신망을 해킹해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해당 학생은 2021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경북대, 숙명여대, 구미대 등 5개 대학과 10개 공공기관 정보통신망에 침입해 81만여 명의 개인정보 217만여 건을 빼낸 것으로 알려졌다. 기반 없는 주먹구구식 대전환에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는 사회적 불안감이 높아져만 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