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 강경 대응” 외친 기관들, 공공서비스 질 개선 위한 고민 잊지 말아야

악성 민원 이어지자, 공무원 보호 위해 삼단봉까지 등장 효율적 공공서비스 부재 지적하는 목소리도 “공무원도 직업인, 사명감·유연함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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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민원 발생량 추이/출처=국민권익위원회

일부 민원인의 폭언 및 폭행 등으로 일선 공무원들의 몸과 마음이 병들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대국민 서비스 기능이 강조됨에 따라 이를 악용한 악성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CCTV를 추가로 설치하고 방호인력에 방검복과 삼단봉을 지급하는 등 직원 보호에 발 벗고 나섰다.

다만 공무원들의 소극적인 행정 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어 공무원 보호와 공공서비스 품질 개선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직원 보호가 최우선”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민원은 총 12,381,209건으로 전년(15,051,510건)보다 17.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가장 많은 민원 발생량을 기록한 기관은 경찰청으로 136만8,713건의 민원이 발생했고, 이어 국토교통부(69만6,889건), 고용노동부(12만5,661건) 등이 뒤를 이었다. 분야별로는 경찰 분야(49.2%)가 가장 많고 교통(10.8%), 도로(7.4%), 행정안전(6.3%) 등 순을 보였다.

중앙행정기관 가운데서도 민원이 발생한 기획재정부는 전년 대비 가장 큰 폭의 민원 발생 증가 폭을 보였다. 기재부의 지난해 민원 발생량은 38,674건으로 전년(22,711건) 대비 70.3% 증가했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위례신사선 등 각종 민간투자사업 관련 민원이 다수 접수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공무원들은 일선 부처로 직접 접수되는 민원을 포함하면 전체 민원량은 훨씬 많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부처별 정책 변화가 발생하면 이를 기점으로 관련 민원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물론 전국 시·군·구청의 민원이 급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6월 공무원을 그만뒀다고 밝힌 한 네티즌은 “차라리 민원인에게 욕을 먹는 건 다행이었다”며 “하루는 민원인이 흉기를 들고 찾아온 적도 있었는데,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어 퇴사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5월에는 지속적인 항의성 민원을 견디지 못한 30대 근로감독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해당 근로감독관은 민원인에게 직무 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을 당하면서 극심한 심리적 압박감을 호소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처마다 직원 보호에 발 벗고 나서는 추세다. 고용부는 앞서 언급한 근로감독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이달 초 ‘특별민원 직원보호반’ 운영을 시작했다. 악성 미원 피해를 입은 직원의 상담을 지원하고 맞춤형 보호조치를 강구하려는 목적이다. 또 법원행정처는 반복되는 폭행 사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중이며, 국세청은 방호인력에 방검복과 호신용 스프레이, 삼단봉 등을 지급해 비상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했다.

2022년 국가공무원 퇴직 현황/출처=인사혁신처

빈 책상 늘어나는 공공기관, 업무 과부하 호소 잇따라

현장에서는 각종 민원을 소화할 수 있는 인력 증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공무원은 “인력이 부족해 하루에 13시간씩 일을 하고 있다”며 “사기업에 비해 급여도 적은데 워라밸(일과 삶의 조화)도 챙길 수 없으니 탈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임용된 공무원은 국가직 기준 총 11,320명으로, 퇴직공무원 수인 28,004명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했다. 퇴직 공무원 중에는 정년 도달, 사망 등 당연퇴직(43.66%)보다 자발적 의사로 그만두는 의원면직(55.09%)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지방직 공무원으로 범위를 넓히고 육아나 장기 요양 등으로 휴직한 공무원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이에 남아있는 공무원들도 극심한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난임 등을 호소하며 치료를 받거나 휴직을 검토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충청북도 청주시에서는 최근 2년 사이 질병 휴직자가 50% 이상 급증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주시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매월 3~4명의 공무원이 업무 과부하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휴직을 신청했으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민원 응대 과정에서 불거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이유로 들었다. 이에 대해 청주시 관계자는 “직원들의 건강과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공공기관 존재 가치 잊지 말아야

다만 공공서비스의 이용자인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공직계에 여전히 만연한 관존민비적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불필요한 형식과 전례에 얽매여 효율적인 공공서비스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이들은 “민원을 제기하면 담당 부서가 따로 있다면서 업무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사례가 다반사”라고 지적하며 “공무원들도 직업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유연함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권익위와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2 민원서비스 종합평가’에서는 총 다섯 개 등급 중 가장 낮은 ‘마’ 등급을 받은 기관이 31곳에 달했다. 해당 등급을 받은 기관들은 국세청과 금융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등 중앙행정기관을 비롯해 시·도 교육청과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들이다. 이는 세금과 금융 등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각종 분야에서 국민들의 불편 해소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직원들의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과 동시에 공공기관의 존재 이유인 공공성, 즉 적극적인 민원 해결을 통한 ‘국민의 삶 개선’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