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하도급으로 얼룩진 건설현장, ‘건폭’ 잡으면 비리 해결되나?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정부의 건폭 단속, 1심 판결 받아든 19명 전원 유죄 무분별한 조사와 영장 발부에 분노한 건설노조, 급기야 ‘분신’으로 항거 불법 하도급 만연한 건설시장, 범법행위 멈추려면 시장 구조부터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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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경찰이 지난해 말부터 건설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건폭(建暴, 건설노조 등 건설 관련 이익집단의 집단행동을 조직적 폭력 행위에 입각하여 말하는 신조어)’ 사범 집중 단속을 시작한 가운데, 1심 재판을 마친 19명이 유죄를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측은 경찰이 정당한 쟁의 행위를 불법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찰이 특별단속을 빌미로 조합원에 무더기 구속 영장을 발부했지만, 정작 실제 기소된 조합원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대립에 일각에서는 시장 상황을 악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건폭 행위’와 잘못된 시장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쟁의’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의 건설노조 때리기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 현장의 조직적 불법·폭력에 대해 상응하는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밝힌 이후, 경찰은 건설 현장 특별단속을 벌이며 반복적 불법행위자에 대한 ‘구속 수사’ 방침을 밝혀왔다. 지난 6월까지 관련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이는 1,484명이며, 이 중 구속 기소된 사범은 145명이다.

지난달 말까지 1심 판결을 받은 19명은 모두 유죄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12명은 징역 1년~2년 6개월 수준의 실형을 받았고 나머지 7명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처음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든 이는 한노총 한국연합건설노조 간부 A씨였다. A씨는 작년 12월 13일 충주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노조원 고용 촉구 집회를 개최하는 과정에 다른 작업자에게 작업 중단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길이 19㎝의 접이식 칼을 들이대며 협박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형량이 과하다”며 항소했지만 기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해당 사건은 대법원에 회부된 상태다.

지난 5월에는 창원지법이 전국연합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 본부 지부장 B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B씨는 2022년 1~9월 부산·경남 공사 현장을 찾아 조합원 채용 등을 요구한 뒤, 거절당하면 집회를 열거나 안전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겠다는 식으로 공사 업체 6곳을 압박해 2,4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지난달에는 관련 혐의를 받는 13명에 대한 1심 판결이 줄줄이 선고됐으며 이 중 9명은 징역형을, 4명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무더기 구속에 분노한 노동자, 노동절 ‘법원 앞 분신’

한편 경찰의 ‘무더기 구속’으로 피해를 본 노조원들도 다수 존재한다. 25일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작성한 ‘강요 및 공갈 혐의 구속영장 청구 현황’에 따르면, 경찰이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에게 신청한 구속영장은 총 47건이다. 지난 5월 말 기준 이들 중 44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렸으나,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52.3%(23명)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평균 구속영장 발부율(81.3%) 대비 크게 낮은 수준이다.

노조 측은 경찰이 노동 탄압에 앞장서며 구속영장 신청을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5월에는 집요한 수사와 이어지는 ‘건폭몰이’ 끝에 극단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노동자마저 등장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50)씨는 피의자 심문을 앞둔 가운데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 잔디밭에서 몸에 화학성 물질을 붓고 불을 붙였다.

양 씨의 분신은 경찰의 건설노조 압박에 항거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노조 측은 양 씨의 죽음이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한 정부가 부른 비극이라고 주장, 경찰의 무분별한 ‘노조 때리기’를 비난하고 나섰다. 한편 이날 법원은 양 씨와 함께 같은 혐의로 기소된 강원 건설지부장과 부지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 앞에서 분신을 택한 故 양회동 씨/사진=민주노총 건설노조

현장 비리의 근원은 ‘잘못된 시장 구조’

이어지는 경찰의 ‘건폭’ 단속은 결국 건설시장의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노동조합원에게 무작정 수갑을 채우기 전에 ‘건폭 행위’를 버젓이 방조하는 건설시장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장 현실에 대한 이해 없이 모든 쟁의를 불법 행위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건설시장에서 일하는 각 직종의 노동자들은 대규모 건설 현장에 단기간 고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고용 경로 역시 일반 노동자와 차이가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실시한 2022년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설노동자 대다수(74.9%)는 팀장, 반장, 기능공 등 인맥을 통해 일자리를 찾고 있다. 무료 직업소개소, 노동조합을 통한 고용은 겨우 2.4%에 그친다.

건설업계 대부분의 폐단은 이 같은 ‘인맥을 통한 고용’에서 발생한다. 우리나라 건설 현장에서는 전문건설업체가 팀장(속칭 ‘오야지’)에게 재하도급을 주는 불법 하도급이 성행하고 있다. 중간 소개자인 오야지 등은 일자리 소개를 빌미로 일용직의 월급 일부를 가져가는 등 ‘중간착취’를 통해 수익을 올린다. 현장에서는 중간착취를 의미하는 ‘똥띠기(똥떼기)’라는 은어가 통용되기도 한다. 그만큼 건설시장에서 이 같은 부조리가 흔하게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불법 하도급 구조는 임금 체불, 부실 공사, 중대재해 사고 등 대다수의 건설 현장 비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건폭’이라 불리는 건설노조는 오히려 긴 시간 동안 건설 현장에서 이 같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없애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결국 비리로 얼룩진 시장을 바로잡을 열쇠는 노조가 아닌 ‘잘못된 시장 구조’에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