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여행사 항공권의 ‘불공정약관’ 공정위·소비자원 드디어 개선하나?

당일 취소해도 환불 어려운 여행사 항공권의 함정 여행사 약관 불공정 사실이지만, 마땅한 제재 없어 급증하는 소비자들의 피해 호소에 공정위·소비자원 “시정 나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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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와 한국소비자원(이하 소비자원)이 여름철 휴가 및 추석 연휴에 온라인으로 항공권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소비자 피해주의보’를 발령했다. 여행사의 항공권 관련 약관이 모호하게 기재된 데다 소비자들에게 다소 불공정하게 규정된 탓에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어서다.

혹해서 산 여행사 항공권, 환불·변경 어려워 피해 호소↑

공정위는 2일 항공권 관련 피해구제 신청 건수가 작년 1~6월 대비 173.4%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의 절반 이상이 국내외 여행사를 통해 항공권을 구매한 뒤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여행객 A씨는 지난 2월 해외 온라인 여행사를 통해 부산-호찌민 왕복 항공권을 신용카드로 구매한 후 스케줄 변동을 이유로 당일 취소를 요청했다. 하지만 여행사는 소액의 포인트만 지급한 뒤 나머지 대금은 일절 환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A씨가 여행사에 최초 결제 수단인 신용카드 결제 금액의 전액 환급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또 다른 여행객 B씨는 비행 전날 항공권을 결제한 뒤 탑승객 영문명이 잘못됐다는 걸 확인하고 수정을 요청했지만, 비행 당일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여행사로 인해 항공사로부터 ‘항공권 NO SHOW’ 처리를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항공사의 사정으로 운항 일정이 변경·결항했음에도 여행사에서 소비자에게 정보를 안내하지 않거나, 항공권 예약등급, 수하물 포함여부 등을 확인하기 어렵게 해 소비자들에게 추가 피해를 입히는 여행사도 있었다.

이에 공정위와 소비자원은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먼저 소비자 개인이 각별한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원은 “국내외 온라인 여행사들에 자율 개선을 권고하고 있지만,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항공권을 구매할 때는 취소·환급 규정 등 약관을 자세히 확인하고 운항 정보 변경에 대비해 등록한 메일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항공권 관련 피해구제 신청 건수가 2022년부터 올해 6월까지 총 1,960건에 달하는 데다 지속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리는 만큼 여행사의 항공권 구매대행 약관을 검토하고, 불공정약관 조항에 시정 명령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소비자원과 함께 영업시간 외에 항공권 판매·발권은 가능하지만 취소는 불가능한 일부 사업자들의 시스템과 관련해 항공사 및 여행업협회 등 사업자단체와 개선방안을 논의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사실 업계 관행이었다

항공사가 아닌 여행사를 통해 예매한 항공권으로 피해가 불거진 사례는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코로나19 경계 태세가 사그라들기 시작하던 지난해 7월에도 소비자원은 항공권 관련 피해구제 사례가 급등하고 있다며 이용객들에게 주의를 요구한 바 있다. 지난 2020년 역시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국가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자국민이 아닌 해외입국자들을 대상으로 입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에 소비자들은 항공권을 이용할 수 없어 취소 및 환불을 요청했지만 일부 여행사는 코로나19 이전 규정을 적용해 결제된 항공권에 대한 환불을 거부했다. 심지어 부분환불이 아닌 여행사 마일리지나 포인트 지급으로 대체한 여행사도 있었다.

여행사의 ‘갑질’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례도 있다. C씨는 “항공사의 취소·환불·교환 규정과 여행사의 규정이 상이한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며 “주말에 결제하고 바로 취소했지만 여행사 직원 부재로 즉시 취소가 안 돼 다음날 울며 겨자 먹기로 수수료를 내야 했다”고 토로했다. 본래 항공사에서 티켓을 구매할 경우 출발 91일 전이라면 무료 취소가 가능하다. 대신 출발일에 가까워질수록 단계별로 높은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C씨가 이용했다는 D여행사 홈페이지에서 인천-호놀룰루 항공권의 취소 수수료 규정을 검색해 보니 출발 전 환불금이 30만원에 달했다. 이는 항공사에서 출발 10일 전 취소할 때 적용하는 가장 높은 금액의 수수료다. 심지어 ‘경유’가 포함된 항공권일 경우 각 항공권 마다 수수료를 고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D여행사의 해외항공권 환불규정/출처=D여행사 홈페이지 캡처

불공정약관으로 낸 수익엔 제재 필요

현행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계약 체결 뒤 7일 이내에는 청약 철회가 가능하다. 단, 이미 사용하거나 시간에 따라 상품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는 예외다. 여행사들은 항공권이 바로 이 ‘예외’에 해당한다며 자사 환불 규정이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항공권의 재판매 가능성을 떨어뜨릴 만큼 긴 시간이 아니다”라고 판결하면서 여행사에 전액 환급을 명령한 바 있다. 전자상거래법 자체가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을 무효 처리하는 ‘편면적 강행규정’이기 때문에 여행사의 약관이 소비자에게 불리하다면 법이 우선 적용된다는 설명도 더했다.

그럼에도 여행사 항공권을 둘러싼 소비자 분쟁은 그치지 않는 모양새다. 서울중앙지법의 판결 이후에도 여행사들은 약관을 수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항공권을 결제한 후 환불을 받지 못할 경우, 소비자는 이를 돌려받기 위해서 소송이나 구제 등을 신청해야 한다”면서도 “돌려받을 금액의 크기를 고려할 때 지속해서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여 문제를 제기할 소비자는 많지 않다”고 전했다. 소비자 대다수가 여행사의 갑질에 ‘똥 밟은 셈’ 치는 탓에 여행사는 여전히 불공정 약관을 지속한단 얘기다.

이에 대해 공정위나 소비자원이 아닌 산업통상자원부나 국토교통부에서 직접적인 제재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이번에 공정위에서 처음으로 시정 의지를 드러낸 만큼 당분간 지켜봐야 한단 의견도 잇따랐다. 항공권 규정에 모르는 소비자들이 많아 피해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만큼 빠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