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계약’ 만연한 만화·웹툰 업계, ‘국력’이 약해지고 있다 ①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 저작권 분쟁 문제로 극단적 선택 검정고무신 사태에 ‘구름빵’ 사태까지 덩달아 재조명 계약 구조에 CP 끼어들며 불공정 계약 문제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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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플랫폼 ‘웨이브’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 작품들/사진=웨이브 캡쳐

지난 2023년 3월 11일,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故 이우영 작가가 캐릭터 업체와의 저작권 분쟁 도중 숨진 채로 발견됐다. 사인은 극단적 선택이었다.

이 작가는 지난 2020년 7월경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 제작사 대표를 상대로 6,000만원 상당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저작권 등에 대한 지분이 쪼개지며 서로 수익 배분이나 사업화에 대한 이해관계가 달라진 것이 분쟁의 원인이다. 이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낸 캐릭터와 스토리임에도 마음대로 만화를 그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정고무신 사건의 주요 쟁점

이 작가는 지난 2008년 검정고무신의 사업화를 위해 형설출판사 대표와 검정고무신 캐릭터 9개에 대한 지분 권한을 나눠 가지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이것이 추후 분쟁의 씨앗으로 작용했다. 출판사 대표가 저작권 지분을 양도받을 때 계약금 등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형설 측은 “작가가 지분 양도 대가로 요청한 건 애니메이션 4기 제작에 대한 투자, 검정고무신 신간 도서의 지속적 출간, 타 출판사에서 계약 종료된 절판 도서의 복간 등이었다”고 반박했다.

사업권 설정 계약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출판사 측과 이 작가 사이에 체결된 계약에선 계약기간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때 설정한 사업권엔 ‘검정고무신 원저작물 및 그에 파생된 모든 이차적 사업권’이 포함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측은 “3차 사업권 설정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설정되어 있지 않고 계약금도 없었으며 계약 범위가 너무 넓고 원작자들의 동의 규정도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출판사 측은 당시 계약은 강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며 이것이 불공정하다는 건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저작권자들 사이의 사업권 설정계약에 따라 출판사 측은 캐릭터 사업, 애니메이션 4기 제작, 극장판 제작, 피규어 판매 등 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 같은 캐릭터 사업 또한 이 작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행태였으며 이것이 이 작가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게 대책위 측의 주장이다. 사업권 계약을 체결하며 이 작가 등 원작자에게 사업과 관련한 사항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고 약속했으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도 했다. 다만 출판사 측은 캐릭터 상품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따른 부가사업이었으며 부가사업에 대한 권한은 애니메이션 제작자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작료 정산 문제도 쟁점이다. 검정고무신 저작권자들은 사업권 설정계약을 통해 ‘수익은 제반 비용 및 대행 수수로 30%를 제외한 순수익을 원저작자 지분율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한다’고 합의했으며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 계약에서의 원작자에 대한 원작료는 매출의 3%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책위 측은 “작가는 출판사 측이 검정고무신으로 어떤 사업을 하고 얼마나 수익을 올렸는지 알 수 없다”며 “적당한 배분을 요구하자 회사 측에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출판사 측은 “정산은 분기 단위로 지분율에 맞춰 지급됐으며, 최초 소송은 오히려 그림 작가와 스토리 작가 사이의 문제였지 회사는 중재를 시도해 왔을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검정고무신으로 불꽃 튀기 시작한 불공정 계약 문제

이 작가의 사망으로 최근 저작권과 관련한 불공정 계약이 다시금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와 비슷하게 출판 업계에 만연한 저작권 포괄적 양도 계약인 ‘매절 계약’과 관련해 여러 쟁점을 남긴 구름빵 소송도 재조명되는 모양새다. 두 사건은 모두 저작권 양도가 핵심 쟁점이 됐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실시한 ‘2022 웹툰 사업체 작가 불공정 계약 실태 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 중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절반 이상인 58.9%에 달했다. 과거 출판계에 만연했던 불공정 계약 문제가 웹툰계로까지 전이되는 형태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쉬이 접근 가능한 디지털 콘텐츠가 증가하며 이를 기반으로 한 저작물의 창작과 배포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저작권 제도의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 침해 분쟁은 향후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농후할 것으로 우려된다.

현행 저작권법 제45조는 저작물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전부, 또는 일부 양도할 수 있으며 저작재산권 전부를 양도하는 경우 별도의 특약이 없으면 2차적저작물작성권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저작재산권은 저작인격권(저작자가 저작물에 대해 가지는 인격적 이해관계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권리)과 달리 재산권으로서의 성질을 지니므로 저작권자의 의사에 따라 자유로이 양도할 수 있다.

저작권법은 저작재산권 전부를 양도하는 경우에도 원저작물의 원형을 해칠 우려가 있는 2차적저작물작성권은 원저작권자에 유보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따라 저작재산권의 양수인이 2차적저작물작성권까지 양도받기 위해선 양도 계약서에 이 같은 점을 분명히 적시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에 대한 불공정 행위가 만연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웹툰 산업 내에서 불공정 계약 또는 불공정한 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작가를 대상으로 ‘경험한 계약 관련 불공정 행위’를 묻자 ‘2차적저작권, 해외 판권 등 제작사 및 플랫폼에 유리한 일방적 계약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40.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왼쪽)와 ‘구름빵’ 백희나 작가(오른쪽)/사진=유튜브 ‘보다’ 캡쳐, 책읽는 곰

웹툰 시장으로도 퍼진 불공정 계약

최근엔 웹툰으로까지 불공정 계약 문제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더욱 심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초 웹툰은 만화 작가에게 더 많은 수익 배분이 이뤄지는 건전한 생태계를 조성했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웹툰 시장에 콘텐츠 제작사(CP)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 플랫폼에 진입하면서 ‘플랫폼-CP-작가’로 이어지는 계약 구조 사이에서 과거 출판물 만화 시장의 저작재산권 양도계약과 관련한 문제점이 오히려 더욱 교묘하게 재연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즉 만화를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 성공하는 사례가 늘면서 플랫폼이나 만화가를 대리하는 에이전시가 2차적저작물 사용 권리를 가져가는 계약을 맺거나 2차적저작물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계약서 조항에 넣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웹툰 업계에 만연한 후차감 MG(minimum Guarantee) 방식 수익분배계약 또한 불공정 계약으로 자주 언급된다. 사실상 사업체의 투자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 부담을 작가가 모두 짊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MG 방식 수익분배란 우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작가에게 MG라는 명목으로 최소수입을 보장하는 돈을 지급한 뒤 향후 작품의 성공, 수익 발생 여부에 따라 RS(Revenue Share)라는 수익 배분을 추가로 받을 수 있는 형태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불공정 계약에 대한 대응과 관련한 제도적 장치는 미흡하다 못해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다. 실제 불공정 계약을 경험한 웹툰 작가의 대응 방식을 살펴보면 ‘업계 지인·동료의 도움을 통해 대응한다’고 답한 비율이 63.7%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데뷔 연도가 오래될수록 ‘혼자서 대응한다’는 응답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우리나라 K-콘텐츠의 위상은 세계적 수준에 다다랐다. 그러나 막상 콘텐츠를 뒷받침해 줄 제도적 장치에는 미비함이 많이 엿보이는 게 현실이다. 사실상 콘텐츠의 위상을 국가 차원에서 깎아 먹고 있는 수준이다. 이래선 안 된다. 콘텐츠의 힘은 곧 국가의 힘, 즉 ‘국력’이다. 콘텐츠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하루빨리 마련해 국력과 국가적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를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