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달러’ 와중 韓 신용등급 AA- 유지, 정책 방향성 잡아야 할 때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 韓 국가신용등급 AA-로 유지 ‘킹달러’ 국제정세 혼란 가중, 한국은 금리 인상 어려워 가계부채 1,757조 육박, 중장기적 경제 위기로 인식하고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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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등급 전망은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지난 2012년 9월부터 10년째다.

피치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방 요인으로 ▲큰 폭의 국가채무 비율 상승 ▲가계부채 상환 문제로 인한 금융 전반의 위험 확대 ▲한반도의 지정학적 긴장 확대 등을 꼽았고, 등급 상향 조정 요인으로는 ▲한반도 긴장 완화 ▲경상수지 흑자 및 대외순자산 확대 ▲거버넌스 개선 등을 지목했다.

이번 신용등급 발표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 가계부채 등 일부 우려에 대해선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를 계기로 한 신용평가사 면담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한국 실질 경제성장률 둔화 예측되지만 대외 건정성 비교적 양호

피치는 28일 한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올해 2.6%에서 내년 1.9%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 등이 수출과 설비 투자에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성장세가 내려갈 것이라 내다봤다. 또한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올해 5%를 기록하고 내년엔 1.5%로 완화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향후 원자재 가격 둔화, 통화 긴축 등으로 상승 폭이 줄어든다는 예상이다.

202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전망치는 기존 58.6%에서 51.5%로 낮췄다. 앞서 올해 1월 등급 발표 때엔 국가채무 증가세 등을 중기적인 등급 하방 요인이라고 지적했지만 이번에 채무 전망치가 개선되며 하방 요인도 완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피치는 “한국의 대외 건전성은 현재의 외부 변동성을 관리하는데 충분한 완충 장치를 제공하고 있다”며 “최근 무역적자·외환보유액 감소 등에도 불구하고 대외 순자산과 연간 경상수지 흑자 전망 등을 고려할 때 양호한 대외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외환보유액도 경상지급액 6개월 치로, AA 등급 국가들의 중간값(2.2개월)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등 상대적으로 탄탄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킹달러’ 혼란 가중, 2차 외환위기 도래하나

최근 국제정세는 혼란 그 자체다. 특히 시장에선 강달러를 넘어 ‘킹달러’라는 단어가 통용될 만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잇달아 인상한 것이 달러의 수요, 공급에 영향을 미쳤다. 기준금리가 올라감에 따라 이자율이 높아지니 달러를 가진 이들은 은행에 돈을 더 맡기려 하고, 결국 시중에 달러가 덜 풀리니 달러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시장 상황은 수입 물가를 올려 원자재 가격 상승을 불러일으키고, 기업 경영 여건 악화와 한계기업 비중 상승을 연쇄적으로 일으킨다. 특히 환율 상승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사실상 2차 외환위기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실상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진=로이터

내달 12일 한은의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가 예정된 가운데 이번에 한은이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란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다. 앞서 Fed는 3개월 연속 금리를 0.75%씩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던 바 있다. 이에 따라 금리 역전 현상이 매우 크게 발생했고, 이를 따라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은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어렵다. 가계의 소득 대비 대출량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은 부동산 시세의 급격한 증가로 자산 증가 대부분이 부동산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할 경우 과도한 이자 부담에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을 통해 원화 가치를 올려야만 물가를 잡고 환율도 안정시킬 수 있으나 결국 앞과 뒤가 꽉 막혀버린 셈이다.

국가신용등급은 안정적이나 가계부채·부동산 위기로 위태로운 한국

한편 한국 사회는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재정 부담이 급증하기도 했다. 고령화 정책의 틀을 잡고 적기 대응을 중시해야 할 때다. 특히 2006년부터 2020년까지 고령화 및 저출산 관련 대책에 380조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됐으나 고령화·저출산은 해결되긴커녕 오히려 심화되고만 있다. 인구정책 방향성을 수정하고 저출산과 고령화를 한 데 묶지 않는 투트랙 전략을 실시해 더욱 섬세한 핀포인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부동산 시장 침체기가 시작됐는데 과거의 규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도 문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1일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지방 광역시·도의 조정대상지역 지정을 모두 해제했으나, 세종과 인천은 투기과열지구만 해제하고 조정대상지역으로 남겨뒀다. 지방 규제 해제로 인해 당장 지방 주택 시장의 숨통은 트일 것으로 전망되나 수도권 규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만큼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여전하다.

우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가계대출 대책을 통한 저소득층 안전장치 마련이다. 한은의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대출은 총 1,757조9,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순간적인 위기 상황이 아니다. 앞으로 계속 짊어지고 가야 할 중장기적인 경제 위기로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물가 및 금리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취약계층에 두터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금리가 오를수록 주택가격은 떨어지고 매매는 얼어붙는다.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 금리는 23일 기준 4.38~6.829%까지 올랐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할 경우 주담대 최고금리는 연 8%까지 근접할 가능성이 있다. 젊은 층의 내 집 마련의 꿈이 점차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가계대출과 부동산 위기를 잡지 못하면 서민은 죽는다. 그렇다고 금리 인상을 포기하자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뜨겁다. 피치가 내놓은 국가신용등급 전망은 ‘안정적’이나 지금의 한국은 어디로 보나 위태로운 상황이다. 앞으로도 ‘안정적’인 등급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정부가 내딛는 발걸음의 방향성에 달렸다. 위기 상황 해결에 있어 보다 다각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한 방향에 경도되지 않은 정책을 추진해 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