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모두 반대하는 ‘택시월급제’, 전국 확대 2년 유예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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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전국 확대 시행 하루 앞두고 '2년 유예' 합의 
2021년부터 시행한 서울시는 월급제 그대로 유지
택시업계 줄도산 위기, 노사 어느 쪽도 이득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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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아가 ‘택시월급제’의 전국 확대 시행을 2년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2019년 택시운송사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택시월급제는 기사들이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고 고정 급여를 받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사들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한다는 취지였지만 법안 공포 이후 택시 업계 노사 모두가 폐지를 요구하면서 ‘수혜자 없는 정책’으로 비판받고 있다. 업계에선 국회가 현장을 모르는 탁상 입법을 추진했다가 택시 업계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현실적 ‘택시월급제’, 예외 조항 대신 2년 유예 합의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택시운송사업발전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택시월급제 전국 확대 시행을 2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여야는 이날 의결한 유예안을 오는 27일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28일 본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다. 당초 택시월급제 전국 확대의 법률상 시행일은 20일이지만 국회가 사실상 2년 유예를 결정한 만큼 행정적으로는 시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택시월급제는 법인택시 운전자가 주 40시간 이상 일하고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받는 제도다. 지난 2019년 문재인 대통령 집권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통과됐다. 법인택시 기사의 사납금 제도를 폐지하고 매월 200만원 이상을 고정 월급으로 지급하자는 취지였다. 2021년 1월 1일 서울시가 처음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다른 시도는 공포 후 5년 내인 올해 8월까지 순차적으로 도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법안 통과 후 택시회사와 법인택시 기사 모두 현장을 모르는 ‘탁상 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지난달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이 택시월급제의 개선을 위해 택시운송사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택시 기사의 근로 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제한하지 않고 노사가 합의한 경우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 조항 신설을 골자로 한다. 국토교통부도 “60세 이상 고령 택시 기사가 전체의 59%에 달하는 등 현실적으로 주 40시간을 운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개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택시월급제의 부작용이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고 결국 예외 조항을 신설하는 개정안 대신 전국 확대를 2년간 유예하는 절충안에 여야가 합의했다. 법안심사소위를 주관한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은 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어 서울을 제외한 전국 시행을 2년간 유예하고 국토교통부는 1년 내 택시 산업 전반에 대한 발전 방안을 마련해 국회에 보고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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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정급여 지급 위한 수입 확보 어려워 적자 심화 우려

이날 법안심사소위에는 택시회사로 구성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운송연합), 양대 택시노조인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택노련)과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민주택련) 관계자들도 직접 참석해 택시월급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이 자리에서 노사 양측 모두 택시월급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폐지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택시 수요 감소를 비롯해 기사 수급난을 겪고 있는 택시 산업에 월급제까지 도입하면 결국 줄도산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 40시간 이상의 고정급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운송 수입이 고정급을 포함한 운송 원가보다 많아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국토부와 한국교통진흥원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택시월급제 도입 시 전국 모든 시도에서 택시회사의 적자가 심화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택시월급제가 고정급여의 방식이다 보니 ‘시간 때우기’ 식 근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기사들이 일을 안 하고 시간만 보내도 월급을 꼬박꼬박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 감소와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

택시 기사 처우 개선을 위해 주 40시간 이상으로 근로 시간을 강제하는 규정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택시 기사들이 고령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월급제는 기사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장시간 근로를 강요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고령자 자격 유지 검사를 받아야 하는 65세 이상 택시 기사는 지난해 5만6,007명으로 2년 새 53% 급증했다.

또한 파트타임 등 단시간 근로를 원하는 구직자의 취업을 막는 부작용도 있다. 이는 근로 형태의 유연화를 막아 택시업계의 인력난을 가중시킬 것이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택시 기사의 입장에서는 소득 감소가 가장 우려스러운 점이다. 월급제가 자발적인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을 없애 결국은 수입 감소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 제도를 시행 중인 서울시가 지난 2022년 9월 택시 기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4.7%가 택시월급제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시행 4년 차 맞은 서울시도 사실상 유령 법안으로 전락

실제로 시행 4년 차에 접어든 서울시에서도 상당수 택시회사가 기준 운송 수입금에 못 미치는 택시 기사의 고정급을 공제하는 등 현행 규정을 위법하게 운용하거나 일부 택시회사는 규정을 준수하다 적자 누적으로 휴업·폐업 등에 이르는 사례가 빈번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서울시 모두 위반 업체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실효성 없는 입법으로 지켜지지도, 규제하지도 못하는 ‘유령 법안’으로 전락한 셈이다.

한편 그동안 택시월급제의 전국 확대를 주장해 온 민주노총은 법 위반 업체 고발 등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그동안 서울의 택시회사를 고발하지 않았던 건 시범 도입 지역이었기 때문”이라며 “법안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위반 업체 고발은 물론 위법과 편법으로 법을 회피하는 행태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운송사업발전법에는 위반 시 처벌 조항이 없지만 고용노동부가 관할하는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간 택시월급제를 표방한 정책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2015년 한국택시협동조합이 운영한 사납금 없는 ‘쿱택시’는 재정난을 버티지 못해 파산했고, 2018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시행한 ‘전액관리제’ 역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전택노련과 운송연합은 물론 같은 민주노총 산하 노조인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까지 지난 6월 ‘택시월급제는 실현 불가능한 제도’라는 입장을 피력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