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협상 앞두고 전운 감도는 중동, 이스라엘·하마스는 새 휴전 중재안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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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휴전 협상 앞두고 美 블링컨 국무장관 급파
중재국 '낙관적 전망'에 타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이란 "가자 휴전 협상에 시간 주려 보복 공격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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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가자지구 휴전 협상의 향방이 이르면 수일 안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협상 중재국의 낙관적인 전망과 달리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새로운 중재안을 거부하며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하마스 지도자 암살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예고해 온 이란의 공격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동 지역의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카이로 휴전 협상 앞두고 이스라엘·하마스 ‘평행선’

18일(이하 현지 시각) 미 국무부에 따르면 오는 21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재개될 것으로 알려진 중동 전쟁의 휴전 협상을 앞두고 이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 도착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후 9번째 중동 순방으로 블링컨 장관은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 요아브 갈란트(Yoav Gallant) 국방부 장관 등과 회담을 진행하고 다음 날인 20일 협상 중재국인 이집트를 방문한 후 귀국할 예정이다.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서둘러 전쟁을 종결 짓기를 희망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협상의 타결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보고, 향후 일주일 안에 가자지구 휴전과 인질 석방 협상을 타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미국, 카타르, 이집트 등 중재국 정상들은 지난 15~16일 양일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휴전회담이 끝난 뒤 공동 성명을 내고 “이번 회담에서 건설적인 논의가 진행됐다”며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남은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 새 중재안을 제시했다”고 발표했다.

3개 중재국은 휴전회담의 구체적인 협상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이집트·가자지구 국경 완충지대인 필라델피 회랑(Philadelphi Corridor)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통제권 문제, 가자지구 구호물자 반입 규모, 이스라엘 인질과 교환할 팔레스타인 수감자 수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휴전회담 종료 후 취재진에게 “협상 전망이 낙관적”이라며 “몇 가지 문제만이 남아있으며 휴전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와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의 순방 첫날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중재국들의 낙관적인 전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내각회의 모두발언에서 “협상이란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다 내줄 수만은 없다”며 “우리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신임 하마스 정치국 최고지도자 야흐야 신와르(Yahya Sinwar)는 카타르 도하에서 논의된 휴전회담에 대표를 내보내지 않았다”며 “그들을 압박하라”고 주장했다.

하마스도 현재 논의 중인 휴전안을 거부하며 반박에 나섰다. 하마스는 18일 성명을 통해 “네타냐후 총리가 새로운 조건과 요구를 내세우는 등 골대를 옮겼는데 미국이 이를 용인했다”며 “이스라엘이 여전히 휴전을 원하지 않고 있는데 중재국들이 환상을 팔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마스의 정치위원이자 대변인인 가지 하마드(Ghāzi Hamad)도 레바논 알마야딘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양측의 간극이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다”며 “네타냐후 총리가 협상을 지연시키며 시간을 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피의 보복’ 예고한 이란, 3주간 공격 미루며 심리전

이런 상황을 두고 이번 협상에서 타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오히려 휴전 협상에 시간을 주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3주간 미뤄준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7일 미 뉴욕타임스(NYT)는 소식통을 인용해 “하마스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Ismail Haniyeh) 암살에 대한 이란의 보복이 추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스라엘 정보당국에 따르면 현재 이란과 친이란 세력인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로켓·미사일 부대의 경계 수준을 낮춘 상태”라고 전했다.

이란의 비호를 받아온 하니예는 지난 7월 31일 신임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이란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후 이란의 수토 테헤란에 위치한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안가로 돌아갔다가 자신의 방에서 폭사했다. 요인 표적 암살은 그동안 이스라엘이 하마스나 이란을 대상으로 요긴하게 활용해 온 전술로 이란은 하니예 암살 직후 이스라엘을 암살 주체로 지목하고 즉시 ‘피의 보복’을 예고했다. 하지만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란은 공격을 단행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번 휴전 협상은 하마스 수장 암살 이후 이란의 보복 공격을 억제하거나 그 수위를 완화할 수 있는 최대 변수로 여겨져 왔다. 미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도 “이란은 즉각적인 보복에 나서지 않고 3주의 시간을 끌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억제력을 회복하는 동시에 확전을 유발하지 않으려 신중하게 계산하고 있다”며 “공격을 늦춤으로써 이스라엘 내부의 두려움과 불안을 조장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공격 지연이 ‘의도된 심리전’이라고 평가했다.

이란·이스라엘 군사력 막강, 양측 충돌 시 확전 가능성

숨 고르기에 들어간 듯했던 이란의 보복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이스라엘에서는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조만간 열릴 카이로 휴전 협상이 성과 없이 결렬될 경우 피의 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서방의 첨단 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과 중동 최대 병력으로 중무장한 이란이 충돌한다면 양측의 전력 수준을 고려할 때 두 나라 모두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 이란의 대리 세력인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 무장 단체들까지 가세할 경우 중동 지역의 확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4일 영국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가 발표한 ‘세계 군사력 균형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이스라엘의 국방 예산은 192억 달러(약 26조원), 현역 병력은 16만9,500명에 이른다. 최첨단 전투기 F-35 39기를 포함해 전투기 340기, 1990년대 후반 개발된 AH-64D 아파치 등 공격헬기 46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고급 방공망 등 정밀 군사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 밖에도 전차 400대, 장갑차 790대, 소형전함 51대 등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지원도 막강하다. 이스라엘은 미국 해외원조의 최대 수혜국으로 원조 대부분이 군사 지원 형태로 이뤄진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국보다 ‘질적 군사력 우위(QME·Qualitative Military Edge)’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군사 원조의 목표임을 법으로 명문화하고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부터 10년 단위로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미국의 이스라엘 군사 지원 규모는 최소 125억 달러(약 17조원)에 이른다.

저항의 축을 이끄는 이슬람 시아파 맹주 이란의 군사력도 만만치 않다.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큰 병력을 보유한 국가 중 하나다. 현역 병력은 최소 58만 명, 예비군 20만 명에 이른다. 또 정규군과 국경 경비를 책임지는 IRGC가 별도의 육·해·공군을 운용하고 있다. 다만 오랜 서방 제재로 이스라엘에 맞설만한 재래식 무기는 부족하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전에 입수한 노후 제트기 몇 대를 제외하면 전투기 자산이 거의 없고 그마저도 정비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란은 수십 년간 정밀·장거리 미사일, 드론, 방공 개발에 주력해 왔다.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해협을 경계할 수 있는 대형 고속단정 함대와 소형 잠수함도 건조했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이란은 중동 최대의 미사일 무기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중동은 물론 동·남부 유럽까지 타격이 가능하다. 이란의 지원을 받아 창설된 헤즈볼라의 전력도 막강하다. 10만 명의 병력을 보유한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정치 조직으로 정규군을 압도하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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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 봉쇄 대비해 대체 항구 찾는 해운업계

이런 가운데 전 세계는 5차 중동전쟁 발발 우려 속에 경제·외교 리스크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국내 해운업계도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대비해 대체 항구를 물색하는 등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호르무즈해협은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좁은 해협으로 북쪽에는 이란, 남쪽엔 아랍에미리트(UAE)가 있다. 특히 해당 지역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쿠웨이트의 핵심 운송로로 세계 원유 공급량의 30%가 이곳을 통과한다.

그동안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의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해 운송로의 봉쇄정책을 군사적 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해 왔다. 지난 2018년 이란의 핵 합의 파기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대(對)이란 제재를 복원하자 이란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맞섰다. 오랜 앙숙인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 올해 4월에는 “MSC사(스위스 선박회사)의 1만5,000TEU(20피트 컨테이너 단위)급 컨테이너선 에리즈호가 이스라엘과 관련됐다”며 해당 선박을 나포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이번에도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한다면 세계 경제는 물류대란과 오일 쇼크로 깊은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동산 원유 수입 대부분이 해당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한국에는 엄청난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올해 초 예멘 후티 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수에즈 운하가 봉쇄되면서 해상 운임이 급등한 ‘홍해 사태’의 여파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호르무즈해협의 봉쇄가 더해지면 해상과 항공 운임의 폭등세가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에 종합 물류기업 LX판토스는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해 사우디아라비아 담만항과 두바이 제벨알리항 등에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경우를 대비해 인근 국가인 오만의 살랄라항과 UAE의 푸자이라항 등에 기항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계 3대 해운동맹인 디얼라이언스에 소속된 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 HMM도 3만DWT(중량톤수)급 벌크선 1척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해 운항 중이다. HMM 관계자는 “이란의 대응 수위를 예의주시하면서 대체 항구 등 대응책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