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예방 기능 없는 전기차 충전기 ‘보조금 전액 삭감’, 실효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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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예방 기능 빠진 전기차 충전기 지원금 740억→0원
'전기차 지하주차장 출입금지' 정책, 전기차 포비아 확대
과충전 화재 과학적 근거도 부족, 불안감 키우는 정부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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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는 가운데 정부가 화재 예방 기능이 없는 완속충전기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올해는 7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내년에는 전액 삭감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는 내년부터 신규 설치하는 충전기에만 적용되는 만큼 이미 설치된 충전기의 화재 위험은 그대로다. 충전율 제한과 충전소 지상화 등 최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화재 예방책을 내놓고 있으나 실효성 논란만 일으키면서 전기차에 대한 불신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충전 방지 탑재 기기에 예산 1,500억원 몰아준다

1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환경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완속충전기 중에서 화재 예방이 가능한 전력선통신(PLC) 모뎀이 없는 충전기 지원을 없애는 대신 모뎀을 탑재한 충전기 지원은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PLC 모뎀은 배터리의 충전상태 정보를 받아 자체적으로 과충전을 막는 장치로, 화재 예방 기능을 탑재하지 않은 완속충전기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화재 예방 기능이 없는 일반 완속충전기 설치 지원 예산은 약 740억원이며, PLC 모뎀이 장착된 화재예방형은 800억원이 책정돼 있다.정부는 일반형 배정 예산을 없애 이를 화재예방형에 몰아 1,5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배정하거나, 다른 전기차 화재 예방 예산에 일부 배정하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다.

보조금 개편 정책, 화재 예방 효과 의문

하지만 이를 두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새로 설치되는 충전기만 지원 대상에 들어가고 기존에 구축된 충전기는 화재 예방 기능을 추가해도 지원받지 못할 수 있어서다. 현재 전국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36만8,056대 중 88.4%는 화재 예방 기능이 없다. 그럼에도 보조금 개편을 포함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현재까지 내놓은 대책은 기존 물량이 아닌 향후 설치될 신규 물량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완충·과충전을 하지 않으면 화재 위험성이 떨어지느냐도 논란이다. 과충전과 발화 간 연관성이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가 내놓은 전기차 지하주차장 출입 제한 조치에 대해서도 과하다는 지적이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배터리 충전상태(SoC)가 낮으면 낮을수록 안전성은 있다”면서도 “출입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효과가 얼마인가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현대차·기아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기차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과충전 때문에 발생한 화재는 한 건도 없었다. 배터리의 두뇌 격인 배터리관리시스템(BMS)으로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작동이 정상 범위를 넘어서면 즉시 전류를 차단해서다. 과충전을 예방하는 기술도 보편화돼 있다. 사용자가 화면으로 확인하는 배터리 잔량이 100%라도 실제로는 탑재된 배터리의 96~97%까지만 충전해 약 10%의 안전마진을 두고 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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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포비아’ 일파만파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대책이 근본적인 해결에 나서지 못할 경우 자칫 전기차 포비아만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여주기식 단기 미봉책들이 되려 전기차 위험성을 과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건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 출입을 막는 서울시 정책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오는 9월 말까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 개 정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90% 이상 충전된 전기차는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 출입이 어려워지게 된다. 결국 전기차 소유주들은 배터리를 90% 이하로 유지하거나 지상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결정에 전기차 차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90%라는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차량 자체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전기차 운전자는 “90%라는 기준을 세운 후에도 화재가 발생한다면 다른 대책이 있냐”며 “내연기관 차의 연료량을 제한하는 것과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8일 내놓은 ‘전기차 배터리 해상운동 안전대책’도 도마에 올랐다. 해수부는 전기차를 배에 선적할 시 배터리 충전 상태가 50% 미만이어야만 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또 운항 중에는 배터리 충전이 불가능하고 충돌 흔적 혹은 사고 이력이 있는 경우에는 아예 선적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차량이 밀집된 선박은 대규모 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높고 운항 중에는 화재 진압이 어려워 대책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선적을 기다리던 전기차 차주들이 애써 충전한 배터리의 충전량을 50% 이하로 떨어트리기 위해 항구 주변을 맴도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전기차업계의 발목을 잡는 정책이 시행되는 가운데 중고차 시장에는 전기차 매물이 급증하고 있다.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에 따르면 화재 사고가 발생했던 1일 이후 ‘내차 팔기 홈 서비스’에 등록된 전기차 접수량은 지난달 25일부터 31일까지와 비교해 무려 18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중고차업계 종자사는 “전기차를 판매하려는 사람들이 큰 폭으로 늘면서 시세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전기차를 매입하는 경우가 많아 중고차업계에도 큰 타격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