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과감한 무역정책 내세운 인도, 글로벌 산업허브로 부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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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최근 10여 년 새 ‘제조 허브’로 급부상
정부 차원의 적극적 산업 장려 정책 덕분
글로벌 밸류체인 합류하려면 섬세한 규제완화책 필요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인도는 저렴한 노동력과 국가 차원의 다국적 기업 유치 및 수출 장려 정책을 통해 명실공히 세계 경제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인도가 자국의 잠재력을 통해 최대한의 이윤을 끌어내려면 수입 관세 구조를 정책적으로 손보는 한편, 노동 및 토지 시장의 경직성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경제 구조의 국가들과의 무역 협정을 정비하고, 노동 집약적 산업 등 인도가 비교 우위를 가진 부문에 집중해야 한다.

사진=동아시아포럼
사진=동아시아포럼

방대한 저임금 노동력 내세워 제조업 영향력 키워

인도는 현재 국제 경제의 중심에 설 수 있는 혁신적인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지난 2022년 기준으로 인구 14억 명을 넘어선 인도는 방대한 규모의 저임금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하면 수입한 자재로 수출용 물품을 만드는 2차 가공 산업 분야에서 비교 우위를 획득할 수 있다. 이 같은 밸류체인(Value Chain,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통해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고, 남는 노동력을 농업 같은 전통적 산업에 투입하는 대신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현대 제조업 분야로 끌어들임으로써 생산성도 끌어올릴 수 있다.

인도의 이 같은 상황은 인건비를 줄이고 공급망을 다양화하려는 다국적 기업들에 있어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다. 이를 일찌감치 인지한 인도 정부는 제조 수출 분야의 조립 허브로 부상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도입했다. 자유로운 외국인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 및 무역 정책, 투자 환경 내 규제 완화, 서비스 연계 비용 인하, 유연한 요소시장 등이 경제 부흥 정책의 일부다.

그러나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 지난 10년 새 인도의 무역 정책 기조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을 끌어오는 방향으로 크게 바뀌었다. 구체적으로 생산 연계 인센티브 프로그램, 법인세 감면, 노동법의 간소화, 파산법 개정, 수입관세 구조 개편 등이 동반됐다. 그런가 하면 인도는 여러 산업 분야를 100% FDI 대상으로 개방했고, 아랍에미리트와 호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현재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이스라엘, 유라시아경제연합(EEU) 등과도 협상을 진행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산출하는 FDI 규제 제한 지수(FDI Regulatory Restrictiveness Index, 숫자가 작을수록 규제가 적음을 의미)에서 지난 2020년 인도는 0.21을 기록했다. 이는 2010년 0.33에서 크게 떨어진 수치이자 또 다른 인구 대국 중국과 비교해도 더 낮다. 인도는 또 지난 몇 년 새 총고정자본형성액(장기적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본재 구매에 들어간 금액)과 GDP 대비 FDI 유입 부문에서도 중국보다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이전 연구들에 따르면 인도는 초창기 무역 협정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와 경제 구조가 유사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무역협정을 체결한 탓에 무역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FTA로 인한 이득을 극대화하려면 더 많은 선진국과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선진국들은 발전한 자본과 기술을 내세워 인도의 노동력 기반 경제를 보완해 줄 수 있고, 인도가 글로벌 밸류체인에 합류하는 것을 도울 수 있어서다. 인도가 최근 들어 부쩍 선진국과의 FTA 체결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타국과의 상호보완성을 강화하고 노동집약적 수출 구조에서 새로운 분야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다.

사실 과거 인도로 흘러들어온 FDI는 주로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목적이 많았다. 이 같은 추세를 변화시키고 글로벌 밸류체인을 통합해 FDI가 인도의 수출 기반 성장에 기여하도록 하려면 역수입 관세 구조의 개선은 필수다. 현 구조에선 부품에 붙는 관세보다 완제품에 붙는 관세율이 더 큰데, 이 때문에 인도처럼 부품을 수입해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 기반 국가들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고자 최근 인도 국가예산청은 필수 부품들에 대한 수입 관세를 낮췄다. 그 결과 인도는 모바일 기기의 순 수입국에서 순 수출국 위치에 오르게 됐다.

적극적 인센티브 정책, 효용 극대화 전략 필요

이와 더불어 일부 분야에 도입된 생산 연계 인센티브 제도의 핵심은 인도가 글로벌 밸류체인에 합류하는 과정에 자리한 장애물들을 극복하는 데 있다. 이 제도는 특정 기간 동안 매출을 증대시킨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준다. 이처럼 섬세하게 설계된 산업 정책은 경험기반학습(learning-by-doing)의 외부효과와 높은 물류 비용, 수요 제한 등으로 고군분투 중인 산업에 다시 숨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인센티브 제도는 또 혁신적이며 기술 집약적인 신흥 산업들에서 특히 효용이 좋다.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촉진시키고 비교 우위를 점하는 데 도움을 주며 수익률까지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실패한 시장에 대한 효과적인 개입인 셈이다.

그러나 어느 분야에 인센티브를 줄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치나 산업적 압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게 문제다. 반도체 제조와 인공지능(AI) 기반 산업 같은 첨단기술 분야에선 인센티브 지급이 정당화될 수 있지만 섬유나 자동차 부품, 식품, 백색가전 등의 분야에 인센티브를 주는 건 현시점에선 큰 효용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당수 산업의 생산 절차가 글로벌 밸류체인 내에서 구조화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인센티브 제도를 단순히 생산 및 판매 촉진 관점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 더 나아가 부가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 또 수출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선 전문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비교 우위를 확보하는 데도 집중해야 한다. 그간 세계 수출 시장에서 인도와 중국 사이 격차를 만든 요소로는 인도의 전문성 부족, 규모 활용의 한계 등이 주로 꼽혔다. 하지만 인도는 최근 들어 제품과 시장을 다각화해 수출집약도를 끌어올리며 중국을 빠르게 따라잡았고, 수출 대상품과 대상국도 크게 늘었다. 그동안 인도의 낮은 수출집약도는 글로벌 밸류체인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 것과 더불어 인도의 자본 및 기술 집약적 산업의 전문성에 대한 편견 탓이 컸다.

지난 1990~2000년대까지만 해도 인도의 경제 개혁은 제품 시장의 진입 장벽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전문화와 규모 증대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면 기업들을 위해 출구 장벽을 없애고 유연한 요소시장을 만드는 것이 필수가 된 것이다. 이 같은 요소들이 경직되면 자원의 재분배 통로가 막히고, 결과적으로 전문화는 물론 글로벌 밸류체인 합류에도 지장이 생긴다. 여러 연구들이 인도의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수출 성과를 낮추는 주요 방해물로 경직성을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에 인도의 여러 주들은 지난 2014년 일찌감치 노동시장 개혁에 착수했다. 노사분쟁법 적용 대상 기업 규모를 직원 100명에서 300명으로 늘리고 공장 규모 기준을 재정의하는가 하면 계약노동법 기준 역시 상향 조치해 전체적으로 규제를 완화했다. 이러한 개혁을 통해 인도 주정부들은 유연한 노동 시장을 만들고자 했다. 이런 가운데 앞으로의 개혁은 토지시장의 경직성 완화 등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기업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면 토지 취득 절차를 간략하게 바꾸고, 소유권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등 투명한 토지 이용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토지 통합 및 토지 임대 계약 활성화 역시 묻혀 있는 잠재력을 발굴해 한층 경쟁력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인도가 글로벌 밸류체인에 합류해 제조 허브로 부상하려면 꾸준한 개혁 정책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역수입 관세구조 개선, 노동 및 토지 시장의 경직성 완화 등 구조적 문제 해결 방안을 시행하는 한편, 고도로 설계된 산업에 집중한다면 인도는 세계 제조업 분야의 중심에 서는 것은 물론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

원문의 저자는 비라마니 추리카단(Veeramani Choorikkadan) 인도 케랄라주 티루바난타푸람 개발연구센터(Centre for Development Studies)의 디렉터 겸 인도준비은행(RBI) 석좌교수입니다. 영어 원문은 Strategically reforming India’s role in global value chain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