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 법안 봇물, 업계선 ‘졸속 법안·입법 지연’ 등 우려 목소리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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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메프 사태에 초당적 법안 발의 이어져, 법안 내용은 '대동소이'
업계 "현장 상황 무시하면 중소형 플랫폼 무너질 수 있어" 우려
1년 반 만에 통과된 이태원특별법, 티메프 법안도 정쟁에 지연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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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한 정치권의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업계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졸속 입법이 쏟아질 수 있어서다.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일각에선 “정략에 휘말려 입법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태원특별법 등 선례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티메프 재발 방지 법안 7건 발의

1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 취지로 발의된 법안은 현재 총 7건에 달한다. 해당 법안들의 주된 내용은 △통신판매중개업체의 판매 대금 정산 주기·기한을 규정하는 것 △정산 대금을 임의로 운용하지 못하게 별도의 관리 기관을 선정하는 것 등이다. 즉 7건의 법안 내용 모두 크게 다를 바 없단 의미다.

물론 구체적으로는 정산 주기·기한 일수, 법적 제재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전자상거래등에서의소비자보호에관한법률일부개정안(이하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은 정산 기한을 구매 확정일로부터 7일 또는 배송 완료일로부터 10일로 규정했으며, 정산이 지연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이율을 더해 정산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반면 김현정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온라인플랫폼중개거래의공정화에관한법률안은 정산 대금 주기 규정을 소비자가 구매한 상품을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로 정하고 있다. 이때 온라인 플랫폼의 시장지배적 우위·독과점 등을 반영해 정산 대금 미정산을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정하기도 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은 정산 주기를 구매 확정일로부터 5일 이내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또 이커머스 플랫폼 입점 업체의 판매 대금을 은행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관에서 별도로 관리(에스크로)하도록 했다. 해당 법안엔 통신판매중개자의 등록 취소·파산 선고 시 판매 대금 우선 지급 규정도 담겼다.

이외에도 △금융사고 발생 직전 3개 연도 기준 연평균 매출액 1,000억원 이상 등 매출·이용 규모가 큰 등록 전자금융업자의 경영지도 기준 미달 시 자본 증액·이익 배당 제한 명령 및 임원개선명령·영업정지·취소 등 행정처분 규정(김남근 민주당 의원 발의안) △결제 대금 정산 기한 10일 이내 및 은행 예치 신탁 관리제 도입(이헌승 국민의힘 의원 발의안) △대금 지급 의무 기한 규정 및 위반 시 과징금 부과(고동진 국민의힘 의원 발의안) △정산 대금 별도 관리 및 임의 유용 시 영업 정지 등 제재 규정(박정현 민주당 의원 발의안) 등도 관할 상임위에 올라온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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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취지는 공감하지만, “업계 특성 무시한 입법은 안 돼”

현행법상 이커머스 업체의 정산 방식은 업체가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 40~70일 이내에만 판매 대금을 정산하면 되기 때문이다. 최대 70일 안으로만 대금을 정산해 주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이번 티메프 사태가 급격히 커진 이유다. 이에 업계는 티메프 사태의 파급력이 큰 만큼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재발 방지법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급물살을 탄 티메프 재발 방지 움직임이 업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단 것이다.

정산 기한이 지나치게 짧아질 경우 당장 자금 마련이 어려운 중소형 플랫폼 업체가 대거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단 목소리도 쏟아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엄연히 돌려줘야 할 판매 대금을 임의로 사용해 발생한 것”이라며 “일률적으로 단축한 정산 주기를 단기간에 모든 업체에 적용하기엔 업체별로 직면한 경제적 문제가 다르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정연승 단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도 “법의 취지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유통·이커머스 업계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갖고 법안을 발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초당적 협력 필요한데, 여야 정략에 입법 시기 미뤄질 수 있단 우려↑

한편으론 티메프 재발 방지 법안이 정략에 휘말려 입법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단 우려도 적지 않다. 티메프 사태 등 범사회적 파급을 불러일으킨 사건에 대해선 ‘초당적 협력’이 불가피하다. 여야가 힘을 합쳐 법안 통과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단 것이다. 이번처럼 국회가 초당적 협력을 강조한 사례는 이제까지도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 국회의 초당적 협력은 대부분 ‘용두사미’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잦았다.

당장 22대 총선을 1년여 앞뒀던 지난해 1월에도 여야 의원 118명이 모여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을 출범한 바 있다. 이들은 승자독식의 정치 문화와 위성정당이란 기형적 꼼수를 잉태한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겠단 취지로 모여 선거제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 개최까지 끌어내는 등 나름의 성과를 냈지만, 제도 개혁에 있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이에 대해 당시 모임에서 정의당 간사를 맡았던 이은주 전 정의당 의원은 “결국 적대적 공생관계 탓”이라고 실패의 원인을 짚었다. 결국 양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지점에 대해선 성과를 낼 수가 없는 구조였단 뜻이다.

이렇다 보니 당장 시급한 현안에 대한 법안이 지지부진한 사례도 수없이 많다. 대표적인 법안이 이태원특별법이다. 앞서 지난 5월 국회 본회의에선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이 통과됐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무려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이태원 참사는 2022년 10월 29일 핼러윈데이를 맞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 음식거리에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사고다. 한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안전사고 중 하나로, 총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간 이태원특별법은 야당 주도로 추진돼 왔으나, 정부·여당과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 입법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1월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이태원특별법을 단독 처리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첨예한 갈등이 가시적으로 드러날 정도였다. 여야의 정쟁이 법안 논의 및 통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초당적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건, 결국 거대 양당의 당리당략에서 개인 의원들도 자유로울 수 없어서다. 사실 국회에서 진행되는 주요 현안들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논의 단계에서 다수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공감하는 안이 적지 않게 확인된다. 그러나 당내 지도부가 의견을 굳히면, 개별 의원들의 의견은 묻히기 일쑤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상임위 간사 등을 통해 입안 과정을 통제하는 구조에 오랜 기간 길들어 있기 때문이다. 주요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나는 일개 의원들 입장에선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란 의미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티메프 사태도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에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