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민-맞불 시위에 홍역 앓는 영국, 이민자 문제 논쟁도 심화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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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민 폭력 시위 확산, 살인 사건에 대한 가짜뉴스가 원인
영국 정부 "폭력 시위 진압할 것, 상비군 배치하겠다"
이민자 유입은 피할 수 없는 흐름? 이민 문제 두고 '갑론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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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반이민·반무슬림 폭력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극우 세력이 전국 100여 곳에서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극우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이들이 맞불 시위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민 문제를 두고 극심한 균열이 가시화하고 있는 셈이다.

반이민 시위에 영국 ‘대혼돈’

9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지난 7일(현지 시각) 저녁 런던과 리버풀, 브라이튼, 버밍엄, 포츠머스 등지에서 극우 세력이 노리는 것으로 알려진 이민자 지원 센터와 법률 사무소 앞에 시위대 수천 명이 모였다. 이들은 “인종 차별을 거부하라”, “난민을 환영한다” 등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극우 세력이 SNS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시위가 열릴 장소 30여 곳의 주소를 담은 리스트를 올리자 맞불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최근 영국은 반이민·반무슬림 시위 및 이에 대한 맞불 시위로 홍역을 앓고 있다. 논란의 시작은 한 살인 사건이었다. 앞서 지난달 29일 댄스 수업에 참여한 어린이 3명이 흉기에 찔려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문제는 해당 사건의 피의자가 무슬림 망명 신청자라는 허위 정보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단 점이다. 이를 기점으로 반이민·반무슬림 시위가 본격화했고, 이와 더불어 맞불 시위도 덩달아 확산하면서 영국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Illustration idea for Britain broken by Brexit.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는 폭력 시위와의 전쟁 선포, 일각선 “반이민 의견 들어는 봐야”

이번 사태에 영국의 키어 스타머 노동당 정부는 ‘폭력 시위와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극우 폭력 시위를 강경 대응으로 ‘진압’하겠단 의지를 강력히 드러낸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폭동 진압 훈련을 받은 6,000명의 경찰관으로 구성된 ‘상비군’을 배치하겠다고 밝혔으며, 검찰은 시위 주동자들을 테러 혐의로 기소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 폭력 시위에 가담한 인물들이 기소되는 상황이 벌어진 바도 있다. 영국 경찰은 폭동이 발생한 이래 지금까지 총 428여 명을 체포한 뒤 140명 이상을 기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역시 폭력 행위에 가담한 3명에게 20~3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등 강경 기조를 유지하는 모양새다.

다만 일각에선 “이민 반대 의견을 인종 차별로만 몰아가는 사태는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우익 세력의 폭력적인 시위 방식을 비판하되 그들이 ‘반이민’을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선 한 번쯤 사회적으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단 것이다.

올해 들어 이민자에 대한 불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 건 이민자 유입에 따른 부작용의 역사가 ‘또 한 번’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영국에서 이민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이민자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내건 혜택들이 기존 영국인이 받는 혜택보다 크다는 인식이 확산했던 영향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영국 내 유럽연합(EU) 출신 외국인은 영국에서 단 3달만 일하면 영국인과 똑같은 사회보장 대우를 받을 수 있었으며, 일정 수준의 임금을 받지 못할 경우 자녀 양육, 집세 등 보조금 혜택도 누리는 게 가능했다. 영국인 입장에선 이민자가 ‘눈엣가시’였던 셈이다.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 사이에선 과거 영국이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선택한 데에도 외국인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이민자 유입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브렉시트를 이끌었단 것이다. 브렉시트 캠페인을 이끌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영국의 외국인 수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EU 탈퇴”라고 거듭 주장한 바 있단 점도 이를 방증한다.

이민자와의 ‘공존’ 논의해야 한단 의견도

그러나 한편으론 “이민자에 대한 반대 여론이 극심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공존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이라며 이민자와의 공존을 주장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민자 확대 흐름이 막을 수 없는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만큼 영국도 사전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시선에서다.

실제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으로 유입된 이민자 수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영국으로 들어온 사람이 나간 사람보다 74만5,000명 많아 순이민자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전 해의 순이민자수 37만 명과 비교해 2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우크라이나 난민 17만4,000명과 홍콩 출신 영국 해외 여권 소지자 12만5,000명 등으로 인한 일시적 증가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많은 수치다.

이민자를 ‘강제 추방’하는 방안도 인권 논란 등으로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앞서 지난해 영국 정부는 영국에 온 난민 신청자들을 6,400km 떨어진 아프리카 르완다로 강제 이송해 심사를 받도록 하는 ‘르완다 정책’의 시행을 타진한 바 있다. 이민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해 이민 신청자를 근본적으로 줄이겠단 취지였지만, 인권 침해 논란이 확산하면서 정책은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결국 이민자 배척 정책이 대부분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