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화 대책으로 ‘그린벨트 해제’ 띄운 정부, 물량 부족 등 한계에 정책 실효성 도마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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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상승세에 재개발 지원 확대, 그린벨트 해제도 본격 추진
업계선 회의적 의견, "그린벨트 해제 시 인근 지역 땅값 상승할 수 있어"
개발 가능 면적도 제한적, 실질 가용 면적 전체 그린벨트의 약 21%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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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재건축·재개발 촉진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그린벨트 해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는 서울 내 그린벨트를 해제하면 집값이 안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만큼 주택 공급이 확연히 늘어날 수 있어서다. 반면 업계에선 회의적인 의견이 쏟아진다. 그린벨트 해제 이후 인근 지역 땅값이 오르면 오히려 집값에 상방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재건축·재개발 촉진법 추진, 주택 공급 확대한다

9일 건축업계에 따르면 지난 8일 정부는 제8차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도심 내 아파트 공급 확대를 위해 ‘재건축·재개발 특례법(가칭)’을 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법안의 골자는 정비사업의 단계별 계획을 통합해 기본계획과 정비계획, 사업시행계획과 관리처분계획의 동시 수립을 허용하는 것이다. ‘기본계획 수립→정비계획 수립→조합 설립→사업시행인가→관리처분인가→착공·준공’으로 이어지던 현행 절차를 간소화하겠단 취지다.

용적률 제한도 한시적으로 완화한다. 정부는 역세권 정비사업지에 대해 향후 3년간 한시적으로 법적 상한의 최대 1.3배까지 용적률을 높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역세권 제3종 일반주거지역이면 최대 390%까지 용적률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역세권이 아닌 지역의 경우 최대 1.1배까지 용적률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수도권 신축매입을 총괄할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인력을 보강해 합리적인 매입 가격을 산정하고 철저한 품질 점검을 거쳐 양질의 신축매입임대주택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최 부총리는 “수요가 많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2025년까지 공공 신축매입을 11만 호 이상 공급할 것”이라며 “서울의 경우 비아파트 공급이 정상화할 때까지 무제한으로 매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외 ▲정비사업 초기 사업비 일부 지원 ▲대출 보증 규모 연 20조원으로 확대 ▲주택연금 개별 인출 허용 및 한도 확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부담금 폐지 ▲8만 호 규모의 신규 택지 발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보증 공급 규모 확대 등 방안도 함께 논의됐다. 전반적으로 재개발 지원 확대에 역점을 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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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서울 그린벨트 해제 추진, 집값 안정화 취지지만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신규 택지 발굴이다. 정부가 밝힌 택지 발굴 방책 중 하나가 ‘그린벨트 해제’여서다.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주택 공급량을 한 번에 끌어올려 집값 상승세를 꺾겠단 방침이다. 실제 오는 11월 발표될 5만 가구 규모의 신규 택지 중 그린벨트 해제 지역만 1만 가구 규모 이상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에서 이 같은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가 추진되는 건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보금자리주택 공급 이후 처음이다.

업계는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을 환영하면서도 그린벨트 해제 청사진에 대해선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가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지 미지수라서다.

통상 그린벨트가 해제되면 그 지역 땅값은 수십 배 뛰어오른다. 그린벨트 해제로 개발이익이 크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지표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지난 2020년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개발제한구역 해제 후 지가 상승에 의한 개발이익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그린벨트 해제가 이뤄진 전국 14개 사업지의 땅값은 평균 32.5% 상승했다.

그린벨트 해제 인근 지역 땅값이 동반 상승하는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그린벨트 해제 사업지 인근 1.5㎞ 지역의 평균 지가변동률이 ‘그린벨트 해제~준공’ 기간 동안 26.4% 올랐다”며 “이는 해당 지역의 평균 지가변동률보다 14.1%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땅값이 오르면 개발 사업비가 늘어나 추가 개발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린벨트 해제 이후 오히려 집값이 상방 압력을 받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단 의미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린벨트 해제 신중론이 거듭 나오는 이유다.

일각선 물량 부족 지적도, “정책 실효성 처음부터 살펴야”

다만 이 같은 우려 섞인 목소리에도 정부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투기 등 문제는 사전 대책 마련을 통해 충분히 억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대책 마련이 구체화된 상태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게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다. 서울시는 그린벨트 전역을 오는 12일부터 신규택지 발표 때(11월)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해당 지역 내 규제를 강화해 이익 편취 가능성을 차단하겠단 취지다. 투기 사례 적발을 위한 국토부와 서울시의 정밀 기획조사도 당장 이달부터 계획돼 있다.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의지가 큰 만큼, 이제 남은 관건은 어느 지역의 그린벨트를 얼마나 해제하느냐다. 수요가 있는 곳에 유의미한 규모의 택지 공급이 이뤄져야 집값 안정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이명박 정권 당시 개발했던 보금자리주택 인근의 서초구 내곡동 및 강남구 세곡동 땅과 개발 계획이 앞서 공개된 강남구 수서차량기지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서울 남부는 강남권 입지를 찾는 이들의 수요를 분산할 수 있어 우선적으로 고려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현행 그린벨트 해제 가능 기준을 적용하면 분산 효과가 큰 소위 ‘노른자 땅’의 개발 가능 면적은 극히 제한된다는 점이다. 역대 정부는 환경 평가 1·2등급지를 보존하되 환경적 가치가 비교적 낮은 3~5등급지에 제한적으로 개발을 허용해 왔다. 이번 정부 역시 수도권 1·2등급지에 대해 보존 원칙을 유지하고 있어 3~5등급지 위주로 개발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국토부에 따르면 서울 그린벨트 중 3~5등급지 비율은 전체의 약 21%(31.54㎢)에 불과하다. 여기에 주변과 연결이 끊겨 택지로 쓰기 어려운 자투리땅을 제외하면 가용 면적은 더 줄어든다. 집값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엔 개발 가능 면적이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애초 정부가 계획한 신규 택지 공급량이 지나치게 적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가 밝힌 대로 오는 11월 강남권에 1만 가구가량이 공급된다고 하더라도 집값 안정이 현실화하긴 어려울 수 있단 것이다. 이에 대해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는 앞선 경험으로 강남 집값 안정이 1만 가구 정도의 물량으로는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며 “서울 그린벨트 해제가 정말 필요한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책에 실효성이 없단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