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증시 블랙 먼데이 원인은 엔캐리 청산, 시장선 ‘추가 청산’ 우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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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강세에 나스닥100 지수 하락, 엔캐리 청산 영향력 가시화
엔캐리 규모 약 5조3,000억 달러로 추정, 추가 청산 가능성 있나
외환시장에 집중된 엔캐리, 증권가 "엔캐리 청산 여파 제한적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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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증시 폭락의 원인으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지목되면서 엔캐리 추가 청산 가능성이 화두에 올랐다. 엔캐리는 일본이나 스위스 등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돈을 빌려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다른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금융 당국 등은 엔캐리 추가 청산이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엔화 강세가 가파르게 이어지면서 청산 속도도 덩달아 빨라질 가능성이 있단 주장이다. 반면 증권가 등에선 엔캐리 청산의 공포가 과대평가 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시장의 우려와 달리 실제론 상당히 제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단 것이다.

BOJ 금리 인상에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본격화

지난 6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은 일본 중앙은행(BOJ)의 금리 인상에 따라 엔캐리 규모가 감소하면서 미국의 기술주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리 인상 등 외부 요인으로 엔화가 강세로 접어들자 엔캐리가 대규모 청산되기 시작하면서 시장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생겼단 것이다.

엔캐리 청산의 영향력은 이미 가시적으로 나타난 상황이다. 지난달 초부터 이번 달까지 엔화 가치가 11% 오르자 나스닥100 지수는 반대로 최대 13% 하락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5일엔 일본의 닛케이가 12% 이상 폭락하는 등 전 세계 증시가 일제히 급락하는 ‘블랙 먼데이’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다만 지금 엔캐리의 영향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통화 거래는 거래소 차원에서 직접 집계되지 않는 탓에 엔캐리의 규모를 확실히 알기가 어려운 상황이라서다.

이에 시장에선 몇몇 지표를 활용해 엔캐리의 규모를 추정하고 있다. 가장 먼저 지표로 삼은 건 일본 은행들의 대외 대출이다. 국제결제은행 자료에 따르면 일본 은행들의 대외 대출 금액은 지난 3월 기준 1조 달러(약 1,379조원)에 달했다. 2021년보다 21% 증가한 수준이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은행 간이나 금융기관 사이의 거래로 일본의 대외 대출이 증가한 건 외국 기관투자자들의 엔캐리에 대한 강한 수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지표로는 일본 개인의 해외 투자액이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일본의 순해외투자액은 총 3조4,000억 달러로 2021년 대비 17% 증가했다. 이뿐 아니라 1조8,000억 달러 규모의 정부 연기금 중 약 절반이 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됐다. 즉 9,000억 달러가 엔캐리로 활용됐을 수 있단 것이다. 이를 합하면 총 엔캐리 규모는 약 5조3,000억 달러라는 계산이 나온다. 만일 이 거래가 한순간에 모두 청산될 경우 미국 증시, 특히 나스닥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은 추가 청산 가능성에 ‘촉각’

이런 가운데 시장에선 향후 엔캐리 추가 청산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추가 청산이 현실화할 경우 충격에 대비할 필요가 있어서다. 이번 블랙 먼데이의 경우 충격이 하루에 그쳤지만, 엔캐리에 묶여 있는 자금이 여전히 상당한 만큼 엔캐리 청산 이후 중·장기적인 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우선 금융 당국은 엔캐리 청산이 근시일 내 지속될 확률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엔화의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초 엔·달러 환율은 161엔대였지만 지난 5일 기준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41엔대까지 떨어졌다. 통상 엔캐리는 엔화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즉 미 달러화 대비 엔화의 환율이 낮아질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엔화 가치 상승세가 이어지면 엔캐리 청산 역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셈이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 체이스도 “엔캐리 투자 커뮤니티 내에선 50~60%까지 해소됐으며, 아직 다 끝나지 않았으므로 추가로 청산될 수 있다”고 엔캐리 추가 청산 가능성을 제시했다. 엔캐리가 종전 수준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도 전했다. 엔화가 단기 급등하면서 엔캐리 트레이딩 주체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급격한 손실을 입은 탓이다. 이에 대해 아린댐 샌들리야 JP모건 체이스 글로벌FX 전략공동책임자는 “현재 수준에서 주변 시장이 안정화되거나 얕은 회복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그 이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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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선 회의론도, “엔캐리 공포 지나치게 과대평가 됐다”

다만 한편으론 시장의 ‘엔캐리 청산 공포’가 지나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BOJ가 당분간 상당 규모의 유동성 공급 정책을 유지하기로 한 만큼 엔화 강세가 급격하게 나타나진 않을 것이란 시선에서다.

BOJ 차원에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우려가 커지기도 했으나, 투자은행(IB) 관계자들은 “실제 추가 인상이 단행될지 불투명하다”고 강조한다. 엔화 강세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BOJ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우치다 신이치 BOJ 부총재가 지난 7일 홋카이도 강연에서 “금융 자본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금리 인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단 점도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증권가에서도 엔캐리와 자산시장과의 연계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엔캐리가 외환시장에 집중된 경향을 보여서다. 이와 관련해 신한투자증권은 “일본과 다른 나라 간 금리 차 확대에도 2022년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 이후 고물가, 고금리 장기화 경계 속에 위험선호 약화가 엔캐리를 제한했다”며 “2000년대와 달리 일본 주식시장의 강세로 상대 수익률 측면에서 해외투자 유인을 약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엔캐리 청산은 엔화 가치 변동에 집중돼 이뤄질 것이며, 주식과 채권 등 다른 자산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캐리가 가상화폐 시장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됐단 점도 엔캐리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미국 투자 전문매체 모틀리풀에 따르면 지난 4일(현지 시각) 오후부터 약 24시간 동안 가상화폐 시장에서 레버리지로 인한 달러 청산 규모는 12억2,000만원에 달했다. 블랙 먼데이 시기와 맞물려 청산이 이뤄진 만큼 시장에선 가상화폐에도 엔캐리가 포함돼 있단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가상화폐 시장에 엔캐리가 분산되면서 일반 자산 시장의 부담이 경감됐단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