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美 체감 인플레이션, 소비자 이탈에 현지 외식업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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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지갑 열어라" 저가 마케팅 펼치는 美 외식업계
가파르게 치솟는 체감 인플레이션, 소비자 고통 가중
일각에서는 Fed 금리 인상 결정 관련 비판마저 제기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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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의 5달러 메뉴 ‘밀 딜’/사진=맥도날드

맥도날드 등 미국 외식업체들이 줄줄이 ‘저가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체감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며 소비 심리가 눈에 띄게 위축되자, 소비자 이탈을 막기 위한 자구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고금리 상황 속 소비자가 겪는 고통이 가중돼 가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결정이 사실상 불필요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소비자 이탈에 꼬리 내린 美 외식업체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맥도날드는 지난 6월부터 ‘5달러 세트’를 미국 전역 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연이은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불만이 가중되자 여론 진화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가격은 2019년 대비 33% 뛰어오른 상태다. 같은 기간 미국 식료품 전반의 가격이 26% 상승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상당히 가파른 상승세다.

SNS에서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제품의 크기나 양을 줄이면서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 비판을 받은 인기 멕시칸 외식업체 ‘치폴레 멕시칸 그릴’의 경우 브라이언 니콜 CEO가 직접 해명에 나섰다. 니콜 CEO는 지난달 말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볼과 부리또를 정량대로 만들 수 있도록 직원 교육을 다시 하고 있다”며 “치폴레의 핵심 브랜드 자산인 넉넉한 양을 전 지점에 다시 강조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웬디스(5달러), 타코벨(7달러) 등 미국의 여타 외식업체들도 자체적으로 저렴한 식사 세트를 도입하며 저가 마케팅에 착수했다.

이들 업체가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는 근본적인 이유는 소비자 이탈 방지에 있다. 시장조사업체 레비뉴매니지먼트솔루션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미국의 패스트푸드 이용객은 전년 대비 3.5% 감소한 바 있다. 줄줄이 뛰어오르는 외식 물가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결과다. 이용객 감소는 곧장 기업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일례로 맥도날드의 1분기 주당 순익은 2.7달러로 시장 예상치인 2.72달러를 소폭 하회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맥도날드의 CFO인 이안 보든은 투자자 회의에서 “일부 미국인 소비자들이 맥도날드를 거부하고 대신 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선택했다”며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등으로 인해 지갑을 닫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시장 상황이 많이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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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체감 인플레이션 상승세

미국 외식업계의 고객 이탈은 현지 ‘체감 인플레이션’ 상승세를 고스란히 입증하는 사례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 2022년 6월 9.1%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다소 둔화했지만, 아직 3.0%(6월 기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식품, 에너지, 주택 등 필수 품목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서민 생활고가 가중되는 상황이다.

외신 등은 공식 인플레이션 수치가 대다수 가계의 체감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지난 5월 워싱턴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식료품·주거·의료 등 기본 생활비만 고려한 ‘체감 인플레이션’은 2021년 초 이후 21.2%까지 뛰었다. 이는 공식 CPI 상승률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CPI 계산 방법에 대한 의문마저 제기된다. CPI 계산 방식은 시대 변화에 따른 수정·보완을 거쳤지만, 여전히 실제 체감 인플레이션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체감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개인의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지며 미국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지출은 미국 경제 활동의 70%가량을 차지하는 주요 지표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전문가는 “체감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 소비가 줄어 경기 둔화 기조가 본격화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기 물가 상승 현상)의 위험도 커진다”며 “2분기의 GDP 성장세가 꺾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잠정치는 전기 대비 연율 2.8% 수준이다.

“Fed 금리 인상은 불필요했다”

시장 상황이 눈에 띄게 악화하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통제를 위해 진행됐던 Fed의 금리 인상 처방이 잘못됐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윌리엄&플로라 휴렛 재단의 젠 해리스 경제·사회 이니셔티브 디렉터는 지난 7월 29일 뉴욕타임스(NYT) 기고를 통해 “지난 몇 달간 Fed는 명백하게 더 낮은 금리를 요구하는 환경에서 인하를 거부했다”며 “Fed가 인하를 기다리는 동안 고통이 계속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이어진 금리 인상 기조가 불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1년 이후 미국과 유럽을 휩쓴 인플레이션이 상당 부분 공급 요인·충격에서 기인했음에도 불구, Fed가 근본적 문제 해결 없이 무작정 금리를 인상했다는 비판이다. 해리스 디렉터는 “Fed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사용한 주요 도구(금리)는 실제로 그 반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마크 잔디 이코노미스트의 발언도 소개했다.

해리스 디렉터는 금리 인상기에 급등한 미국 주택 가격을 대표적인 문제로 꼽았다. 인플레이션 원인 중 약 3분의 2를 차지한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주택 착공을 늘리는 공급책이 필요했지만, 금리가 인상되며 오히려 건설 부문이 침체했다는 것이다. 에너지 역시 마찬가지라고 부연했다. 고금리로 인해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 비용이 상승하며 전쟁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리스크가 커졌고, 기후 변화 대응에도 피해를 줬다는 분석이다.

해리스 디렉터는 “우리는 인플레이션의 다양한 요인을 이해하는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세계는 더 많은 공급 불안과 지정학적 격변, 가뭄 등 기후변화, 팬데믹, 노동력 고령화 등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더불어 “금리 인상은 이러한 공급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제대로 도움이 되기 어렵다”며 “연준의 인플레이션 대응 방식은 싸움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