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과 꼭 닮았다” 글로벌 시장 뒤흔드는 中 철강 덤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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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상반기에만 철강 5,300만 톤 쏟아냈다
관세 장벽 강화하며 '반덤핑' 움직임 보이는 美
2010년대 초 중국發 덤핑 사태 재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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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중국산 철강재가 글로벌 철강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국 건설 시장의 부진으로 인해 소화되지 못한 철강 물량이 수출 시장으로 밀려나며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10여 년 전 벌어졌던 중국발(發) 철강 덤핑(Dumping, 상품을 일반적인 가격보다 저렴하게 대량으로 판매하는 행위) 대란이 다시금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철강 물량 밀어내는 中

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철강 시장은 중국의 덤핑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은 올해 상반기에 전년 대비 24% 증가한 5,300만 톤의 철강을 수출했다. 시장에서는 이런 가운데 중국의 올해 연간 철강 수출량이 2015년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1억1,000만 톤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철강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원인으로는 중국 내 건설 경기 부진이 지목된다. 중국국가통계국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매년 약 20%씩 건축 착공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철강의 55~60%가 건설용 강재라는 점이다(중국강철협회 통계 기준).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철강사들은 내수 건설 시장 침체에도 불구, 가동률을 줄이는 게 오히려 경제적 손실이라고 보고 있다”며 “현재 중국의 내수 건설 시장은 이전처럼 철강재 공급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결국 남아도는 물량이 고스란히 수출 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철강 덤핑으로 인해 시장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포스코 등 국내 주요 제철 기업들의 실적은 줄줄이 악화하는 추세다. 포스코홀딩스의 지난 2분기 영업이익(연결기준)은 7,52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43.3% 급감했다. 현대제철의 2분기 영업이익은 98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8.9% 미끄러졌다.

美, 중국 철강에 ‘관세 폭탄’

이에 세계 각국은 중국의 덤핑을 제지하기 위한 ‘장벽’을 세우고 있다. 올해 상반기 미국이 중국산 철강을 대상으로 ‘폭탄 관세’를 부과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4월 17일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맞서기 위해 중국산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현행 7.5%에서 3배 수준인 25%까지 올리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는 무역법 301조, 일명 ‘슈퍼 301조’에 근거한 조치다. 해당 조항은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하거나 차별적인 무역 행위로 인해 자국 산업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 재량으로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 백악관은 “중국의 보조금과 정책 지원으로 인해 철강 분야에서 과잉생산 구조가 고착화되고, 저가 공세로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라엘 브레이너드(Lael Brainard) 국가경제위원장은 관세 강화에 대해 “불공정 수출로부터 미국 제조업과 일자리를 지켜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미국의 관련 조치는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의 전형”이라며 “중국은 자국의 정당한 권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역시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무역 보호주의 조치를 즉각 중단하라”며 공정 경쟁의 원칙 존중과 WTO 규정 준수를 촉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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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 휩쓸었던 ‘덤핑 악몽’

철강 덤핑으로 인한 주요국의 갈등이 가시화한 가운데, 시장 일각에서는 현재 상황이 10여 년 전 발생했던 중국발 철강 덤핑 대란과 닮아 있다는 평이 제기된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일어난 ‘부동산 개발 붐’에 발맞춰 철강 생산량을 급격히 늘린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경기 침체 기조가 본격화하며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고, 내수 시장의 철강 수요 역시 급감했다. 중국 내 철강 사용량 증가율은 2014년 1%에 그쳤다.

당시 중국 철강 업계는 국내에서 소화하지 못한 물량을 해외로 돌렸다. 특히 물류비가 적게 드는 동아시아 지역으로의 수출이 급증했다. 한국이 사실상 철강 덤핑 피해의 ‘중심’에 섰다는 의미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중국산 철강 제품 수입 규모는 1,340만 톤으로 전년 대비 34.9% 폭증했다. 그러나 한국 철강 시장은 수요 부진으로 이미 포화 상태였다. 쏟아지는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은 사실상 거대한 ‘악재’였던 셈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10년 전 벌어진 철강 덤핑 사태는 ‘악몽’에 가까웠다”며 “최근 시장에서 그때(2010년대 초)와 비슷한 흐름이 관측되고 있는데, 철강업계가 제소 등을 준비하며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제철은 중국산 철강 제품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위해 피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중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 관세 부과를 추진 중이며 산업부와 지속적으로 조율 중에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제철이 올해 내에는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요청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