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리 인하 움직임에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 추진, 지지부진한 법 개정이 걸림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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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표시 외평채 21년 만에 발행 추진, 강달러 약화 사전 대처 취지
현행법이 '족쇄', "현행 전자증권법상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 불가능"
공전하는 법안 개정,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 '또' 무산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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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1년 만에 원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 채권(외평채) 발행을 추진한다. 이에 시장에선 미국의 금리 인하에 따라 현재의 강달러(원화 약세) 현상이 급격히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사전 준비에 들어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원화표시 외평채 최대 10조원 발행 검토

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 9월께부터 연말까지 1년 만기 원화표시 외평채를 8조~10조원가량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매달 2조~3조원씩 발행할 수 있는 물량이다. 외평채는 정부가 환율 안정 목적으로 조성한 외국환평형기금 재원으로 쓰인다. 통상 외환 당국은 달러당 원화 환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달러 가치 상승) 보유한 달러를 매도해 달러 값을 낮추고, 반대로 달러당 원화 환율이 지나치게 낮아지면(달러 가치 하락) 원화로 달러를 매수해 달러 가치를 방어한다. 원화표시 외평채는 후자의 경우에 주로 쓰인다. 달러를 사들일 실탄인 원화를 비축하는 것이다.

올해처럼 강달러 현상이 심화한 상황에서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이 급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을 서두르는 것은 향후 환율 변동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돼서다. 추후 강달러 현상이 누그러질 경우에 대비해 달러 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단 의미다.

최근 정부가 외환시장 선진화를 위해 거래 마감 시간을 오후 3시 30분에서 다음 날 오전 2시로 확대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 참여가 활발해지는 데 비해 거래량이 빈약할 경우 원화값이 급등락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정책 대응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자금 조달 비용을 줄이겠단 목적도 있다. 지난 2003년 이후 외평기금은 외화 매입에 필요한 원화를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빌려왔는데, 그 비용은 직접 단기채권을 발행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비쌌다. 공자기금이 10년물 국고채로 조달한 자금이어서다. 장기물의 금리는 통상 단기물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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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엔 외화표시 외평채 발행하기도

정부는 앞선 지난 6월에도 외평채를 발행한 바 있다. 당시 발행한 건 외화표시 외평채였으며, 규모는 10억 달러(약 1조3,800억원) 수준이었다. 발행금리는 미국 국채 5년물에 24bp가 가산된 4.576%다. 이는 지난 2019년 달러 외평채 5년물을 발행할 때 기록한 30bp보다 낮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전체 외화표시 채권으로 살펴봐도 지난 2021년 10년물을 발행할 때 기록한 25bp보다 낮은 수치다.

이 시기 정부가 외평채를 발행한 건 지나치게 높아진 원달러 환율을 잡기 위함이었다. 실제 6월께 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진입할 수 있단 우려가 확산했다. 6월 17일 오전 9시 38분 기준 환율이 전 거래일 종가(1,379.3원)보다 2.15원 오른 1,381.45원에 거래된 데다 이후에도 1,380원 초반대에서 움직이는 등 원화가 평가절하되는 양상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외화표시 외평채를 발행, 원화의 대외가치를 안정시키려 했다.

외화표시 외평채 발행을 통해 한국이 정기적인 채권 발행자의 지위를 확립하기도 했다. 앞으로 외평채에 대한 수요가 지속 창출되면 정부는 외화 조달 창구 확보 및 대외적 신인도 상승 등 부가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외평채의 벤치마크 기능도 강화됐다. 정부 차원에서 채권의 기준을 다시 잡아 새로운 준거금리(벤치마크)를 제공해 국내기업이나 금융기관이 보다 낮은 금리로 외화를 조달할 수 있게 됐단 것이다. 이번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도 다양한 부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전자등록 법안 논의 필요한데, 법 개정은 지지부진하기만

다만 현행법상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의 기술적 기반이 되는 전자등록 법안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여서다. 전자증권법에 따르면 주식·사채뿐만 아니라 국채도 전자등록이 돼야 한다. 국고채와 재정증권은 한국은행이 등록하고 발행·유통은 한국예탁결제원 명의로 진행되는 체계다. 기재부는 원화표시 외평채가 이런 국채 발행 및 등록 절차를 적용받지 못하면 한국은행이 전산시스템을 설계·개발을 새로해야 하므로 외평채의 원활한 발행과 유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법안 개정이 선행돼야 하는 상황이지만,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관련 개정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기재부는 우선 개정안이 통과된다는 전제하에 구체적 발행 계획을 검토하겠단 입장이다.

그러나 시장에선 원화표시 외평채를 실제로 발행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며 거듭 우려를 내보이는 모양새다. 이미 앞서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이 무산된 바 있어서다. 상술한 외화표시 외평채 발행 건 역시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이 무산된 데 따라 차선책을 택한 결과였다. 법 개정이 늦어질 경우 올해 외평채를 발행할 수 있는 날이 줄어드는 만큼 법안 논의를 신속히 이룰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