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하는 美, 국내 반도체 소부장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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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국 HBM 수출 제재 카드 꺼내든 美, SK·삼전 영향은 제한적
누적되는 대중국 규제 압박, 국내 반도체 소부장 입지 '위태'
대규모 투자로 '반도체 굴기' 속도 내는 中, 일각선 기술 유출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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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대(對)중국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출 규제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업계는 해당 규제로 인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HBM 제조사의 타격은 비교적 적을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 시장에 단품으로 직접 공급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사양 HBM 물량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강력한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가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계의 숨통을 옥죌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美 “중국에 HBM 공급하지 말라”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이르면 이달 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중국 기업에 HBM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대중국 반도체 제재 방안을 공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HBM3(4세대 HBM), HBM3E(5세대)를 비롯해 HBM2(3세대) 이상의 첨단 AI 메모리 및 이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장비 규제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만든 고성능 메모리로, 주로 인공지능(AI) 가속기를 가동하는 데 쓰인다.

블룸버그는 추가 제재가 해외직접제품규칙(FDPR)을 기반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FDPR은 해외 기업이 만든 제품이더라도 미국 기술이 사용됐다면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규칙이다. 국내 주요 HBM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와 같은 미국의 반도체 장비와 케이던스, 시놉시스 등 EDA(전자설계자동화)를 사용하고 있다. FDPR 기반 제재가 이뤄질 경우 충분히 수출 통제 범위에 들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는 해당 제재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의 HBM 물량 대부분이 엔비디아, AMD 등의 미국 기업에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8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대부분의 HBM 물량을 소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HBM3과 HBM3E 8단을 사실상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역시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성능을 낮춰 개발한 GPU H20에 HBM3을 공급하고 있다.

韓 소부장, 대중국 규제 강화에 신음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의 연이은 대중국 반도체 규제 강화가 국내 반도체 소부장 업계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미국 정부는 2022년 10월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한 이후 꾸준히 동맹국에 규제 동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에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이 대중국 첨단 반도체 장비 등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지난 5월에는 미국 정부가 한국 반도체 장비·부품 업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당시 미국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미국 정부가 대중국 반도체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론다코리아를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론다코리아가 미국 기업 램리서치의 제품을 중국 기업에 재판매했다는 것이 이유다. 이에 론다코리아 측은 “우리는 국내 기업에만 소싱(공급)한다”며 “해당 사실(중국 기업 대상 부품 판매 여부)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시장에서도 미국의 강력한 대중국 규제로 인해 국내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의 시장 입지가 크게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 매출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라며 “미국의 강력한 반도체 규제가 이어지면 당장의 ‘돈줄’이 끊기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미국의 규제를 이겨내기 위해 첨단 기술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악재”라며 “중국이 자체적인 반도체 소부장 기술을 갖추게 될 경우, 한국 업체들이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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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당하지 못한 투자?

실제 중국은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으며 ‘반도체 굴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10년간 조성돼 온 ‘중국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펀드’는 중국 정부의 굴기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앞서 중국 정부는 2014년 1차 펀드(2014~2018년)로 1,400억 위안, 2019년 2차 펀드(2019~2023년)로 2,000억 위안을 각각 투자한 바 있다. 지난 5월 조성된 3차 펀드에는 3,440억 위안(약 66조원) 규모의 자금이 투입됐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자체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 수입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중국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당하지 못한’ 투자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중국의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421건, 투자액은 29억9,000만 달러(약 4조1,100억원)에 육박한다. 불과 반년 만에 2018년 기록한 역대 최고 투자액(27억4,200만 달러)을 돌파한 것이다. 홍콩의 한국 투자액(8억3,000만 달러)까지 합치면 상반기 투자 규모는 38억 달러(약 5조3,000억원)를 넘어선다. 이는 같은 기간 발생한 외국인 직접 투자액(153억 달러·약 21조원)의 25%에 달하는 규모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상반기 중국의 투자액 가운데 76%가 제조업에 집중됐으며, 이 중 79%가 전기·전자(반도체 등), 화학공업(이차전지 등)에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중국이 정상적인 투자를 위장해 교묘하게 국내 기업의 기술을 빼돌릴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발생한 해외기술유출범죄 12건 중 10건은 중국이 화근이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은 매출 감소와 기술 유출을 동시에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며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 강화가 결과적으로 업계 전반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셈”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