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일본은 과연 돈으로 출산율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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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정부, 출산율 제고 정책에 연 32조원 투입
“일본은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인가”질문에 긍정 38% 불과
사회 변화 발맞춰 가족 구성의 다양성 존중해야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저출생 심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본 정부가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에만 연간 수백억 달러를 쏟아붓기로 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일본에서 출산율 제고 정책은 늘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날로 줄어든 탓이 컸다. 이에 일본에선 달라진 사회 풍토와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사진=동아시아포럼
사진=동아시아포럼

지난달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새 인구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출생아 수는 72만7,000명으로, 통계 집계를 시작한 189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 역시 1.2명으로 사상 최저치였다. 앞서 기시다 후미오(Kishida Fumio) 총리는 지난해 3월 앞으로 6~7년이 이 같은 추세를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의 출생률은 이 같은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버릴 듯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시다 총리가 전례 없는 저출산 해결 대책을 추진하겠다며 제시한 연간 예산은 3조6,000억 엔(약 32조4,500억원)이다. 다자녀 가구에 대학 학비를 지원하고 아동수당을 늘리는 방안 등을 골자로 한다. 일본 정부는 회계연도 기준 오는 2026년부터 국민과 기업의 손을 빌려 재원 마련을 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여기엔 75세 이상 고령자의 분담금을 인상해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세금 인상안이 국민들에게 부담을 줄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정 지원 정책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많은 물음표가 붙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지난 2019년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가 채 안 되는 금액이 각 가정에 대한 공공복지 정책에 배정됐지만, 여전히 가정 복지에 대한 재정 투자와 출산율의 상관관계가 불확실하다.

“양육은 가정에서” 보수적 관념이 걸림돌 됐다

일본 출산율이 처음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건 지난 1989년으로, 그해엔 1.57명을 찍었다. 후생성이 처음 저출산 관련 대책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나 당시의 정책들은 정치인들이 아닌 후생성 관료들에 의해 추진됐고, 그 와중에서도 실제 정책 개발은 다른 부처들이 주도하면서 후생성은 정작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이같은 관료주의에 의한 분열은 2001년 극에 달했다. 당시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Koizumi Junichiro) 전 총리는 정부 부처 개편을 진행하면서 아동가족국을 후생성 산하에 배치했다. 고이즈미 정권의 초점은 가족 복지보다는 보육 관련 규제 완화에 집중됐다. 이는 자민당 내 주요 세력들이 보수적인 일본식 가족 가치관을 형성해 나간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보수적인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보수적 정책들은 새로운 정부의 출산율 제고 정책에 재원을 투입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의료나 연금용으로 마련된 특별편성예산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후 2003년 들어서는 저출산 대책 기본법을 도입했다. 일본의 출산율에 대해 전방위적인 접근을 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 역시 결혼과 관련된 기존 관행을 바꾸는 역할은 미미했다. 당시 일본엔 여전히 3대 가구를 유지하는 가족들이 많았고 중매 문화도 성행하고 있었다.

고(故) 아베 신조(Abe Shinzo) 당시 총리가 집권하던 2013년에 일본 정부는 ‘인구 감소 극복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워라밸(워크-앤-라이프 밸런스, 일과 삶의 균형)’을 비롯해 맞벌이 가구 지원책 등을 발표했지만 역시나 눈에 띄는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실패했다. 여기엔 보수당 의원들의 가치관이 크게 작용했다. 보수당 의원들은 가족을 주된 보육 기관으로 간주한다. 아이는 국가가 아니라 가정이 키우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 때문에 정책들에 제대로 돈이 투입되지 못했고,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도 정부의 출산 및 양육 지원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뚝 떨어졌다.

지난 2020년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국이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인지’ 묻는 질문에 일본 국민의 38%만 긍정 답변을 내놨다. 스웨덴과 프랑스에서 같은 질문에 대해 각각 97%와 82%가 그렇다고 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일본에선 워라밸 지원 제도에 대한 현실과 국민의 바람 사이 간극이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족과 개인에 대한 인식도 출산율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스웨덴과 프랑스를 비롯해 개인주의가 발달한 국가에선 여전히 출산율이 높은 편이지만, 일본과 한국처럼 가족이 양육 중심지로 여겨지는 곳에선 출산율이 현저히 낮다.

일본 미혼 남녀 “결혼은 필수 아냐” 목소리 커져

일각에선 가족중심적 사회의 문화적 규범과 관행이 되레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일본에선 사회적 가치 변화에 따라 출산율이 급락하고 있다. 지난 2023년 18~34세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한 국가설문조사에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결혼이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싱글 라이프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과거 1982년 조사에선 미혼 남성의 2%, 미혼 여성의 4%만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답한 바 있는데, 2021년 이 비율은 각각 17%, 15%로 대폭 증가했다.

출산율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이같은 설문 결과는 가족 구조의 다양성이 필수적인 시대가 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존의 ‘정상 가족’ 형태를 넘어서 미혼이든 사실혼이든 아이를 원하는 모든 이들이 재정적, 감정적 불안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인식이 낡은 가족 구조와 사회 개념을 계속 붙잡고 있는 일본에 있어 여러모로 좋은 일은 아니란 점이다.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다양한 가족 구성을 통한 사회 변화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혼 가정에도 가족 복지 혜택을 주는 등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원문의 저자인 타카오 야스오(Takao Yasuo)는 호주 커틴대(Curtin University) 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사회 연구 대학원의 겸임 선임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Why cash alone won’t solve Japan’s baby deficit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