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선행지표’ 생산자물가 7개월 만에 하락, ‘디스인플레이션’ 기대감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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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22일 ‘6월 생산자물가지수(잠정)’ 발표
농림수산품, 전월 대비 2.8% 떨어져 하락세 견인
생산자물가지수 하락에 물가 상승 압력 약화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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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물가지수가 7개월 만에 하락세로 전환했다. 배추, 참외 등 농산물 가격이 안정세를 찾으면서 상승세를 억제한 것으로 분석된다. 생산자물가는 일반적으로 1~3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로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 인플레이션이 완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7월 생산자물가에는 장마철 폭우가 변수로 작용하면서 향후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6월 생산자물가 하락세 전환, 전월 대비 0.1%↓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1% 감소한 119.19(2020년=100)를 기록했다. 최근 1년간 생산자물가의 전월 대비 상승률을 살펴보면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2개월 연속 하락했다가 같은 해 12월 0.1%를 기록하며 상승세로 전환했다. 이후 지난 5월까지 6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오다 지난달 오름세가 꺾이며 소폭 하락했다. 지난해 6월과 비교하면 2.5% 오른 수치로 지난해 8월 0.9% 이후 11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품목별로는 농림수산식품 물가가 전월 대비 2.8% 하락하며 3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농산물과 수산물 가격은 각각 6.6%, 0.8% 하락했다. 농산물 중에선 배추, 참외가 각각 45.3%, 28.1% 하락했고 수산물 중에는 고등어와 게가 각각 39.7%, 12.7% 하락했다. 반면 축산물 가격은 2.5% 올랐다. 돼지고기 가격이 12.4% 상승한 영향이 컸다.

전반적으로 먹거리 물가가 하락하면서 물가가 안정세로 돌아섰지만 이같은 기조가 앞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사과(71.0%), 배(199.7%) 등 과실류 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여전히 많이 오른 상태인 데다 폭우 등으로 과일, 채소 가격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성욱 한국은행 물가통계팀장은 “폭우 등이 반영되는 정도나 폭은 7월이 지나 봐야 알 것”이라며 “기후가 계속 이렇게 안 좋다면 오를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산품은 보합세를 나타냈다. 음식료품이 0.2% 상승했지만, 석탄 및 석유제품이 0.1% 내렸다. 맛김과 초콜릿은 각각 5.3%, 4.6%씩 올랐고, 플래시메모리도 2.6% 올랐다. 휘발유와 제트유는 4.4%, 6.1% 하락했고, 전력·가스·수도 및 폐기물도 0.1% 떨어졌다. 산업용 도시가스가 2.9% 하락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서비스 부문의 경우 사업지원서비스는 0.5% 내렸지만, 음식점·숙박서비스가 0.3%, 부동산서비스가 0.1% 오르며 전체적으로 0.1%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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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생산자물가, 소비자물가와 대체로 동행하는 경향”

폭우 등으로 인한 먹거리 물가 변수가 있지만 이번 생산자물가의 하락은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산자물가의 하락은 소비자물가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산자물가가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시차 상관관계는 0.806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당시 두 지수 간의 높은 상관관계에 대해 석유류나 농·축·수산물과 같은 품목이 두 물가지수에 모두 반영되는 편제 대상이라는 점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생산자물가지수 외에도 인플레이션 등 경제 흐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로 근원물가지수를 꼽는다. 근원물가지수는 장마, 폭염 등 계절 요인이나 국제 유가와 같은 외부 요인 등 일시적 공급 충격에 따른 변동을 제외한 지표로 체감물가와 다소 괴리가 있을 수 있지만 펀더멘탈을 토대로 결정되는 만큼 물가의 장기적 추세를 반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9년 근원물가지수 산출 방식으로 식료품과 에너지 제외 지수를 도입했고 이후 미국과 일본도 해당 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은 근원물가지수로 2000년 개발한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와 2011년 개발한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를 공표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에 약 3개월 정도 선행한다. 품목별로 인과관계를 살펴보면 원자재 가격 상승이 생산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소비자물가에 파급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생산 단계별로는 원재료 지수와 중간재 지수 상승률은 근원물가 상승률에 각각 5개월과 3개월가량 선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美, 6월 생산자물가 상승에 금리 인하 신중론 제기

생산자물가지수, 근원물가지수 등 인플레이션 선행지표는 각국 통화·금융시장 등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정부의 경제정책과 기업의 운영 기조를 조정하는 기준이 된다. 일례로 올해 2월 발표된 미국의 1월 생산자물가는 전월 대비 0.6%, 전년 동월 대비 1.6% 오르는 등 시장 예상치를 상회했다. 근원물가지수도 전월 대비 0.4%, 전년 동월 대비 3.9% 상승했다. 이 또한 각각 시장 전망치인 0.3%, 3.7%를 웃돌았다.

당시 시장에서는 1월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2021년 3월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2%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 달리 생산자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리를 동결했다. 또한 고금리 장기화 전망에 투자심리가 크게 악화되면서 국채 금리가 뛰었고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모두 하락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2일 발표된 미국의 6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2% 상승하며 다우존스 등 시장 예상치인 0.1% 상승을 상회했다. 에너지와 식품 물가를 제외한 근원물가지수도 전월 대비 0.4% 올라 역시 전문가 전망치인 0.2%를 웃돌았다. 두 지수 모두 깜짝 하락했던 지난 5월 지표에서 반등한 수치다. 이에 따라 앞서 6월 소비자물가지수의 상승세가 둔화하면서 형성됐던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다소 주춤하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AP통신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히 높다는 신호”라며 “올해 초에도 물가가 상승하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바 있다”고 전했다. 다만 한편에서는 ‘온건한 물가 상승세’를 뜻하는 시그널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CNBC는 “인플레이션이 하락 추세가 재개됐음을 재확인하는 수치”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투자자는 소비자 중심 물가 지표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이에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향해 안정적으로 움직인다는 확신을 얻기 전까지는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최근 의회 증언에서 인플레이션 환경이 개선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문제는 그것이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로 지속 가능하게 하락하고 있다고 충분히 확신하느냐인데 나는 아직 그렇게 말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