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플레이션’ 지속에 해외 멸균우유 뜬다, 수입산 멸균유 수입 45%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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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에 폴란드, 호주산 등 해외 멸균우유 인기 급증
향후 관세 철폐 시 멸균우유 수입 증가세 확대될 전망
낙농가·유업계 팽팽한 줄다리기, 국내 우윳값 인상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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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는 국내산 우유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수입산 멸균우유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이에 국내 우유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저출생 고령화로 소비 인구가 줄어들어 실적 악화가 현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강력한 대체재마저 등장한 것이다. 우유업계는 멸균우유가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다고 보면서도 멸균우유 시장의 성장세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멸균우유 수입량 증가 추세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멸균우유 수입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수입량은 2만6,699톤(t)으로 집계됐으며 지난해 상반기엔 1만8,379톤, 지난해 전체로는 3만7,407톤이 수입됐다. 앞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올해 초 펴낸 ‘농업전망 2024′ 보고서에서도 멸균우유 수입량 증가세가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해 멸균유 수입량은 전년 대비 18.9% 증가한 3만7,931톤으로 전년 대비 18.9% 증가했다. 주요 멸균유 수입국은 폴란드로, 전체 수입량의 88.8%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호주(4.1%), 독일(3.9%), 프랑스(2.2%) 순이다.

이 같은 수입량 증가의 주원인으로는 가격 경쟁력이 꼽힌다. 수입 멸균우유 중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폴란드산 멸균우유 ‘믈레코비타 3.5%’(1L)의 대형마트 판매가격은 1,900원(100mL당 190원)으로 같은 용량의 국내산 흰 우유인 ‘서울우유 나100%’(100mL당 297원)와 비교하면 3분의 2 수준이다. ‘서울우유 멸균우유’(100mL당 352원)와 비교하면 더욱 저렴하다.

유통기한이 1년 정도로 길고, 개봉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온에 보관할 수 있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고온에서 고압으로 살균해 실온에서 자랄 수 있는 모든 미생물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입 멸균우유가 유럽과 미국에서는 평상시 소비자들이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대중 제품이라는 인식이 국내에서도 퍼지기 시작한 것과 시중에 알려진 사실과는 달리 영양소 파괴없이 미생물을 고온 처리해 오히려 배탈 및 설사 방지 등에 안전한 제품이라는 평가가 확산되고 있는 점도 주효했다. 이런 이유로 일반 가정뿐만 아니라 우유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카페나 제과점 등에서도 수입 멸균우유 사용량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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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올덴버거 우유 2종/사진=BGF리테일

2026년부터 미국·유럽산 유제품 관세 철폐, 멸균우유 수입 확대 전망

멸균우유 수입 증가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오는 2년 뒤부터 미국·유럽산 유제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 국내 우유 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관세청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EU)산 우유, 치즈 등에 대한 관세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26년 1월부터 폐지될 예정이다. 미국산의 경우 올해 적용되는 관세가 4.8%지만 내년에 2.4%로 단계적으로 낮아지며 2026년 0%가 된다. EU산 유제품 역시 매년 순차적으로 낮아져 2026년 아예 사라진다.

이에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국내 우유 제조사들은 초긴장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마다 국내 원유를 의무로 구매해야 하는 쿼터가 있다 보니 국내 제조사가 수입 원유를 들여와 파는 건 어렵다”며 “관세까지 없어지면 국산 우유는 가격 경쟁력을 더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커지는 국내 원윳값 인상 가능성, 아이스크림·과자 가격 상승 불가피

이런 상황에서도 국산 우유 값은 올해도 오를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낙농가와 유업계는 올해 우유 원유(原乳) 가격 인상 여부를 두고 한 달 넘게 머리를 싸매고 있다. 앞서 낙농가와 유업계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낙농진흥회는 올해 원윳값을 결정하기 위해 지난달 11일부터 전날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소위원회 회의를 진행했으나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당초 낙농진흥회는 한 달간 소위원회를 운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협상이 길어지면서 기간이 연장됐다. 지난해에는 양측 논의가 6월 9일 시작돼 48일 만에 타결됐고 2022년에는 원윳값 협상과 낙농 제도 개편 논의가 맞물리면서 9월 중순에야 첫 회의가 열려 약 50일간 가격 협상이 진행되기도 했다.

올해 원윳값은 농가 생산비와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L당 26원까지 올릴 수 있다. 흰 우유 등 신선 유제품 원료인 ‘음용유용 원유’ 기준으로 현재 L당 1,084원에서 협상 이후 최대 L당 1,110원으로 오를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낙농가는 최대인 26원 인상을 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와 유업계는 동결 또는 최소폭 인상을 주장하면서 양측이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원유의 사용 용도별 차등가격제 운영 규정’에 따라 사료비 비중이 60% 이하인 경우, 생산비 증가분(44원)의 -30~60% 범위 내에서 가격을 올릴 수 있다. 지난해 사료비는 588원으로 18원 올랐기 때문에, 생산비 증가분에서 비중은 40.9%로 이에 해당한다.

이번 협상에서 원윳값을 올리는 것으로 결론을 내면 흰 우유 제품 가격 인상도 불가피하다. 지난해의 경우 원윳값이 L당 88원 오르자 유업체들이 우유 제품가격을 4∼6% 올린 바 있다. 올해도 이 기조가 유지될 경우 우유가 들어가는 아이스크림, 과자 등의 가격이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우유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116.56) 대비 5.9% 오른 123.49를 기록했다. 앞서 지난해 우유 소비자물가지수는 118.13으로 전년 대비 9.9% 올랐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시기인 2009년(19.1%) 이후 14년 만의 최고치였다. 지난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3.6%)과 비교해도 2.8배 수준으로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