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러시아, 동북아시아 내 입지 확대 위해 북한과 맞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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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상호방위조약, 사실상 군사 동맹에 준한다는 평가 나와
러시아, 좁은 동북아 내 입지 북러관계 내세워 다시 넓힐 듯
북한 비핵화보다 군비 통제에 관한 논의 집중 가능성↑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한 달 전 평양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치러진 이후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에서 안보 위협이 커지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이번 회담에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며 상대국에 대한 군사 협력 강화에 대한 의지를 재차 다졌다. 서방 국가들은 이를 두고 러시아의 서구권 침략 야욕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Putin Kim talks
사진=동아시아포럼

동북아서 힘 못 쓴 러시아, 본격 입지 강화 노리나

그간 러시아는 동맹을 강조하는 다자주의를 내세워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애를 써 왔지만 사실상 힘을 크게 쓰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이번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해 러시아가 한반도 안보 문제에서 무게감 있는 플레이어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상호방위조약이 군사동맹에 준하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국은 정상회담 이후에도 군사 교류를 이어가는 등 노골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동북아시아 정세에서 러시아는 아직 입지를 탄탄히 굳히지 못했다. 중국과의 협력도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러시아 외교 당국 내에선 동북아, 특히 한반도에서 러시아가 보다 독립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의 균열은 러시아에 호재로 작용했다. 러시아의 대중 의존도는 꾸준히 상승 추세였는데, 이 와중에도 중국은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가 자국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 왔다. 러시아 입장에선 중러 관계에 생긴 균열이 자국 이익을 당당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이 된 셈이다.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으로 명명된 이번 북러 상호방위조약은 지난 1961년 당시 소련과 북한이 맺은 조소 우호 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이하 우호조약)과 비슷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부 김일성 주석이 중국 북경을 방문해 맺었던 해당 조약은 지난 1996년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당시 러시아 대통령 재임 시기 사실상 폐기됐다. 그런 조약이 28년 만에 되살아났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각에선 이번 조약 체결을 두고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및 핵 억지력을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기존 러시아의 기조와는 결이 소폭 다르다. 러시아는 우호조약 폐지 이후 지난 2000년과 2001년에 북한과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들 협정에도 상호 방위 지원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중국이 북한의 핵 야욕을 우려하면서도 북한과 꾸준히 상호 방위 협정을 유지해 온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그런가 하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러시아가 북한과의 협력을 명백히 자국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해석에 더 힘이 쏠린다. 비핵화에 대한 논의가 사그라진 상황에서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자국을 명명한 이후 이번 조약이 체결된 점을 고려한 분석이다. 실제로 러시아가 다시 북한에 힘을 보태기로 결정한 배경엔 다자주의를 통한 영향력 확대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계산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탈냉전 시대에 접어든 뒤 러시아의 동북아 내 입지가 부쩍 줄어든 탓에 그간 러시아 입장에선 다자회담에 참여하는 정도가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마저도 늘 밀려났다. 지난 1997년을 시작으로 종종 개최된 북한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관련 4자 회담엔 한국과 북한, 미국, 중국만 참석했고, 러시아는 지난 2003년 열린 6자 회담에 일본과 함께 겨우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18년 판문점 선언 당시에도 러시아는 배제됐다.

앞서 러시아가 핵 확산에 반대한다며 국제연합(UN)의 대북 제재에 일괄적으로 찬성표를 던졌을 당시 러시아 정책 당국 관료들 사이에선 이 같은 결정이 러시아의 경제적 기회를 앗아갔다며 “실수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데 대한 제재 완화 등의 당근책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대북 제재에 찬성하면서 북한으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취할 기회가 날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약 체결로 이 같은 불만의 목소리도 한층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비핵화에서 군비 통제로 옮겨가는 대북 논의

미국은 여전히 북한 문제와 관련해 비핵화를 주요 기조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미국 정계에선 ‘핵을 가진 북한’과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전보다 덜 금기시되는 분위기다. 미국 내 담론이 비핵화에서 군비 통제 방안으로 옮겨간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군비 통제 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이 자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고, 최근 대북 기조에서도 비핵화보다는 핵 억지력과 안정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이번 조약 체결로 러시아는 이제 한반도에서 한층 더 영향력 있는 이해관계국으로 발돋움했다. 물론 이 조약을 통해 러시아가 북한의 비핵화 절차에서 더 큰 지분을 갖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미국과 동맹국들을 비롯해 북한도 더는 러시아를 무시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주요국들의 비핵화 노력과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중국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중국과 북한이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 대가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 합의를 추진하고 한반도 평화 로드맵을 그려나가는 과정에 러시아가 힘을 보탠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이 같은 다자간 노력이 답보 상태에 빠지면서 러시아가 중국의 보조국 역할을 할 이유가 줄어든 것은 물론, 오히려 중국과의 경쟁 관계가 더 도드라지게 됐다. 러시아가 북한을 어디까지나 중국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긴 하지만, 러시아와 북한이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 데다 역사적으로 러시아가 북한 문제에 입을 대 온 사실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러시아가 계속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차원에서 손을 잡는다고 해도 양국이 지역적 측면에서 영향력을 쥐기 위해 경쟁하는 것 역시 불가피하다.

과거 다자 회담이 주요 쟁점이었던 시기엔 관련국들이 러시아를 논의 과정에서 비주류 국가로 끌어내릴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새 조약을 통해 러시아가 분쟁 시 북한에 힘을 보태야 하는 의무조항이 마련된 만큼 러시아는 북한의 군비 통제 문제에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러시아 입장에선 북러 관계를 강화함과 동시에 비핵화 실현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창구가 열린 셈이다. 이번 조약 체결로 러시아는 다자간 군비 통제 논의에서 중대한 역할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가 쥔 카드가 얼마나 좋은 패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러시아가 지난 30여 년간의 핵 외교에서 항상 놓쳤던 무언가를 확보했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원문의 저자인 앤서니 V 리나(Anthony V Rinna)는 중국-북한(Sino-NK, 사이노-NK) 리서치 그룹의 선임 에디터입니다. 폴리시 이코노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Russia swoops to secure influence in a nuclearised Korean peninsula | East Asia Forum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