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에 윤곽 잡힌 ‘SK 노태우 비자금’, 증여세 부과 논란 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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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비자금 논란 확산, 증여세 부과 등이 쟁점
증여세 부과에 법조계는 회의적 의견, "환수 방법 없는 상황"
일각선 '특별법 제정' 가능성 제기되기도, "여론 관심 쏠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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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아트센터 나비, SK그룹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해당 비자금에 대한 증여세 과세 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과세 당국이 이 자금의 성격을 비자금으로 규정짓고 과세를 본격화할 경우 6공화국의 비자금 실체가 추가로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세청장 후보자 “노태우 비자금, 시효 남아 있다면 과세해야”

18일 재계 및 당국에 따르면 강민수 국세청장 후보자는 전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노 전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과세 여부를 묻는 말에 “시효나 관련 법령 검토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12·12 군사쿠데타의 성공에 기반해 조성된 불법 통치자금에 대해선 “시효가 남아 있고 확인만 된다면 당연히 과세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적으로 과세 시효가 지나지 않았고 노 전 대통령의 불법 통치자금이 맞다는 결론이 나오기만 한다면 과세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앞서 노 관장 측은 이혼 소송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이자 노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옥숙 여사의 메모를 근거로 1990년대 초 선경(SK) 측에 300억원이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해당 자금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하며 재산 분할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이후 해당 메모는 1조3,800억원에 달하는 재산 분할을 결정하는 핵심 근거가 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 여사의 메모엔 ‘선경’ 꼬리표가 달린 300억원 외에도 가족 등에게 각각 배정된 604억원이 더 기재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인사청문회에서 “904억원은 음지에서 양지로 처음 나온 돈이고 불법 자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국세청에서 단호하게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비자금 규명·추징할 방법 사실상 없어”

강 후보자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해 시효·법령 등 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차후 6공화국의 불법 통치자금과 관련된 추가 과세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직 세간에 뜬소문으로만 존재하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1,000억여원 남아 있어서다. 현재까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4,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까지 확인돼 추징된 액수는 2,682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법조계에선 해당 자금이 실제 노 전 대통령의 추가 비자금이었다는 점을 규명하거나 추징할 방법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단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이나 최종현 전 SK 회장이 모두 타계한 데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증거 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 측이 항소심에서 “태평양증권의 매입 자금은 선경 계열사에서 조달한 돈으로, 횡령금이지 비자금은 아니다”라고 주장할 때도 재판부는 이 자금이 비자금이 맞는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돈이 비자금으로 확인된다 해도 추징하거나 환수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며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지 않는 한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국세청도 여러모로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과세를 이루기 위해선 김 여사 메모를 과세의 ‘충분한 근거’로 봐야 하는데, 차후 대법원에서 해당 메모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경우 과세에 대한 시비가 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최종심 판단까지 지켜본 뒤 과세 여부를 판단할 경우에도 ‘인지 시점으로부터 1년’을 두고 시효 논란이 일 수 있다. 실제 비자금이 건네진 ‘시점’도 관건이다. 무제한 부과제척 제도는 1999년 법 개정 때 생긴 조항으로 2000년부터 시행됐다. 메모 작성 시점에 이미 비자금 전달이 이뤄졌다면 소급 적용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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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여세 탈루 등 논란 여전, 여론 향방에 결과 달라질 듯

그러나 일각에선 “여론의 관심이 높은 만큼 여론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거세진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논란이 커지면서 특별법 제정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증여세 탈루’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재판부에선 최태원 회장의 지배력 핵심인 SK 지분을 최 회장과 노 관장 두 사람의 기여로 만들어진 부부 공동재산으로 봤다. 이렇다 보니 2심 판결이 확정되면 노 관장 기여의 원천으로 꼽히는 노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을 자식에 대한 상속이나 증여로 보고 이 역시 세금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적지 않다.

국세 징수권 시효가 지났다 하더라도 징수는 가능하다. 현행법에 ‘납세자가 부정행위로 상속·증여세를 포탈한 경우 해당 재산의 상속·증여가 있음을 안 날부터 1년 이내에 과세할 수 있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과세 당국이 해당 메모를 인지한 시점, 즉 2심 판결일(지난 5월 30일)을 ‘상속·증여가 있음을 인지한 날’로 보면 징수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가 확산한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도 논란에 불을 지핀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가 처음 불거진 건 지난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수사 때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230억원이 사돈 관계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에게 전달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측은 “1990년 신 전 회장에게 관리를 부탁하며 비자금 230억원을 건넸고 동생 노재우씨에게 120억원 상당을 맡겼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2001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추심금 청구 소송을 제기, 재판부는 신 전 회장에게 230억원, 재우씨에게 120억원을 각각 납부하도록 판결했다. 이후 신 전 회장이 80억원을 대납하고 재우씨가 150억4,300만원을 계좌이체 방식으로 납부하면서 미납 추징금 230억원이 16년 만에 완납됐지만, SK 비자금 사태가 재차 발생하면서 논란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런 가운데 구체적인 비자금 규모가 재확인되면 부정적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