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변죽만 울린 ‘플랫폼법’ 22대서 ‘재점화’, 업계 불안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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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야권 온라인 플랫폼 관련 법안 잇달아 발의 
플랫폼 업계 “규제로 산업 위축·경쟁력 저하 우려”
미국·EU도 자국 기업 보호하는데, 한국만 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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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이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추진 압박에 나섰다. 대형 플랫폼의 시장지배적 지위로 인한 불공정 거래 및 독과점을 막기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시각에서다. 민주당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을 잇달아 발의한 상태다. 이에 플랫폼 규제가 산업을 위축하고 경쟁력을 저하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정위·더불어민주당, 플랫폼법 추진 압박

1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온플법은 총 5건으로 파악됐다. 모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플랫폼 시장의 급성장에 따른 불공정 거래 문제와 독과점을 방지하는 방향에 맞춰졌다. 네이버·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 등 대형 플랫폼을 ‘시장지배적 온라인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해 독과점 규제를 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공정위가 추진하는 플랫폼법과도 맞닿아 있다.

현재 발의된 온플법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과 달리 플랫폼의 독점적 지위를 감시하는 법안과 플랫폼과 사용자(판매자) 간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한 법안으로 세분화된 것이 특징이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은 불공정거래 행위 기준을 마련하고 플랫폼이 이를 위반하면 이용사업자가 단체를 구성하고 거래조건을 협의하는 제도를 만들도록 명시했다. 오픈마켓 입점 판매자가 노조를 결성해 단체행동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동시에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안’에는 독점 플랫폼 기준을 시가총액 15조원, 매출액 3조원, 이용자 1,000만 명 이상으로 명시하고 불공정거래 행위(자사우대·끼워팔기·멀티호밍 제한·데이터 이동 및 접근 제한·최혜대우 요구)가 적발되면 서비스를 중지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최근 공정위로부터 자체브랜드(PB) 상품을 검색 결과 최상단에 노출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조작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한 쿠팡과 같은 사례가 발생하면 서비스 운영 자체를 중단시킬 수도 있다.

특히 최근 배달 플랫폼들이 중개수수료 정책을 변경하면서 이 같은 법 추진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새로 마련한 수수료 상품을 이용해야만 무료배달 가게로 노출되는 방식만 해도 ‘구입 강제’에 해당할 수 있어서다. 온플법에는 이런 행위가 사용자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점을 플랫폼 사업자가 입증해야 하며, 입증하지 못하면 책임을 지도록 입증책임도 전환하는 안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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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내 디지털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입법정책 과제’ 주제 세미나에서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사진=이성권 의원실

플랫폼법, 해외 빅테크 의존성만 높일 수도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플랫폼법이 국내 기업들을 과도하게 규제하고 더 나아가 해외 빅테크의 국내 시장 영향력만 강화시켜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16일 국회입법조사처와 한국정책학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개최한 ‘국내 디지털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입법정책 과제’ 주제 세미나에서 학계 관계자들은 올바른 입법 방향성을 강조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세미나 발제자로 나선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디지털 산업과 관련해 이미 제정된 법 또는 발의된 법은 규제 목적과 철학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명분은 이용자 후생 증진이지만 실제로 이용자 후생에 긍정적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실증하지 못한다. 오히려 국내 산업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내 플랫폼 업체에 공적 부문의 역할이 과도하게 주어지고 있다고 짚기도 했다. 예로는 지난 2022년 10월 SK C&C의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네이버·카카오 등의 주요 서비스에서 장애가 발생한 사고를 들었다. 해당 사고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을 개정해 이용자 수 1,000만 명 이상 또는 트래픽 비중이 국내 2% 이상을 차지하는 업체를 ‘통신재난 관리체계 수립·운영 대상 사업자’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네이버와 카카오를 포함한 대형 플랫폼 사업자 7개가량이 추가로 편입됐다. 김 교수는 “특정 사건이나 이슈가 있을 때마다 심도깊은 연구도 없이 즉흥적으로 부가통신사업자인 플랫폼에 공공성을 강제하는 것은 법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플랫폼법이 오히려 산업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이 시행된 이후 관련 조사 보고서들이 나왔는데, 유럽 내 기업들과 합작투자가 30% 감소했다는 내용도 있었다”며 “규제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산업 외적으로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입법 시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겸 정보통신기술(ICT)법경제연구소장도 “사업 모델로서 플랫폼의 특성, 다층적으로 경쟁 관계가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국내 토종 플랫폼이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하는 현실을 면밀히 분석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욱준 서울과기대 IT정책대학원 교수 역시 “이용자 후생을 위한 법이 토종 기업의 후퇴와 글로벌 빅테크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것”이라며 해외 서비스 종속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韓만 글로벌 스탠다드 역주행”

일각에서는 플랫폼법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주행하는 악법이란 쓴소리도 제기된다. 공정위 입장과 달리 플랫폼법은 글로벌 트렌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EU 등에서 플랫폼 독과점 폐해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대응 입법을 완료했다”고 밝힌 데 이어 이후에도 플랫폼법이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한 바 있다.

하지만 공정위가 표준으로 삼는 EU의 규제 명단엔 유럽 기업이 한 곳도 없다. EU는 유럽 내 △연 매출 75억 유로 △시가총액 750억 유로 △월간 플랫폼 이용자(4,500만 명) △3개국 이상 진출을 조건으로 사전 규제 대상을 선정했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메타·틱톡이 여기에 속한다. 6개 기업 중 미국 기업은 5곳이다. ‘유럽의 플랫폼 규제는 본토 기업을 보호하는 법안’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이들 기업은 전 세계에서 매출을 올리는 1위 사업자인 만큼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애플의 사가총액은 한국 GDP(국내총생산)의 약 1.7배에 달하며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도 전 세계에서 천문학적 매출을 올린다. 이와 관련해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안으로 한국 토종 기업을 규제하는 건 혁신을 저해하고 소비자 피해와 경영 타격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EU의 DMA를 표방하는 경우는 있지만 본격적으로 도입을 추진해 자국 기업을 규제하려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시각으로 풀이된다.

실제 우리보다 앞서 빅테크 규제를 시도했던 미국 의회도 지난해 모든 법안을 폐기한 바 있다. 이를 두고 ‘플랫폼 독점 종식’ 등 5개 법률 제정을 자국 산업 보호 차원에서 중단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대만 경쟁당국 역시 “유럽의 DMA 제정을 추진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밝혀왔다. 이런 사정은 다른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자국 시장에 관련 법령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인 국가는 드물다는 게 중론이다. 일각에선 DMA가 통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게 점치고 있다. 실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국 하원 의원 22명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유럽의 DMA 규제가 미국 기업들을 부당하게 옥죄고 있다”며 “규제를 중단해달라”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