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HD한국조선해양-STX중공업 결합 ‘조건부 승인’ “선박 엔진 공룡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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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 3년간 공급거절·가격인상 금지
선박 엔진 핵심 부품 '크랭크샤프트' 두고 경쟁 제한 우려 판단
선박용 엔진 시장 내 HD현대-한화 양강 구도 형성, 신경전 격화
선박 엔진·엔진 부품 1위 사업자 지위 공고히, 수주 경쟁력 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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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선박 엔진 점유율 1위 기업인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이 STX중공업 인수 계약을 체결한 지 1년 만에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문턱을 넘었다. 이번 결합으로 HD한국조선해양의 선박용 시장 지배력이 더 강화된 가운데 지난 2월 HSD엔진(현 한화엔진)을 인수한 한화그룹과의 경쟁도 가열될 전망이다.

HD한국조선해양, STX중공업 품는다

15일 공정위는 HD한국조선해양이 STX중공업의 주식 35.05%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업결합 조건으로는 국내 선박용 엔진 시장의 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정조치를 부과했다. 이번 기업결합은 선박과 선박용 엔진, 엔진 부품 등 조선업 전반에 걸쳐 수직계열화 체계를 구축한 HD한국조선해양이 선박용 엔진 및 엔진 부품 사업자인 STX중공업을 인수하는 것으로, 공정위는 엔진 부품-선박용 엔진 간 수직결합, 선박용 엔진 간 수평결합, 선박용 엔진-선박 간 수직결합 등 유형별로 경쟁 제한 가능성을 검토했다.

공정위가 HD한국조선해양의 독과점 문제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시점은 지난해 하반기다. 작년 7월 31일 HD한국조선해양은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파인트리파트너스가 보유한 STX중공업 주식 652만 주와 제3자 배정 방식으로 발행된 신주 536만 주를 인수했다. 거래 규모는 813억원가량으로 HD한국조선해양이 확보한 STX중공업 지분은 35%다. 이후 HD한국조선해양은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검토 결과 공정위는 엔진 부품과 선박용 엔진 간 수직결합과 관련해 결합회사가 경쟁 엔진사에 핵심 부품인 크랭크샤프트를 공급하지 않을 경우, 엔진 생산에 중대한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크랭크샤프트는 엔진을 만들 때 필수적인 부품으로, 엔진 내 피스톤 직선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꿔주는 기능을 한다.

현재 국내에서 크랭크샤프트를 만드는 회사는 HD한국조선해양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과 STX중공업의 자회사 한국해양크랭크샤프트(KMCS), 그리고 두산그룹 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 등 3곳이다. HD현대중공업과 KMCS의 시장점유율을 합하면 70~90%에 달하지만 HD현대중공업은 크랭크샤프트를 외부에 판매하지 않고 있어 선박업체는 KMCS나 두산에너빌리티 두 곳을 통해 크랭크샤프트를 사야 한다.

이에 경쟁사인 한화엔진은 크랭크샤프트의 80%가량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나머지 20%는 KMCS에서 공급받고 있다. 업계 4위인 STX엔진은 KMCS로부터 크랭크샤프트를 100% 조달받는다. 이러한 경쟁 구도에서 HD현대중공업과 한 회사가 된 KMCS가 한화엔진에 크랭크샤프트 공급을 중단하는 경우, 한화엔진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KMCS가 공급을 거절하면 대체선 확보도 어렵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공장가동률이 포화상태라 크랭크샤프트 생산 증대 여력이 없고, 중국산 제품은 품질·운송비·납기 안정성 등 측면에서 대체가 쉽지 않다. 한화엔진의 입장에서는 KMCS가 유일한 대체 공급선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KMCS가 크랭크샤프트의 공급 가격을 높이거나 제품을 지연납품해도 경쟁사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이는 시장의 경쟁을 저해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에 공정위는 HD한국조선해양과 STX중공업의 결합 승인 조건으로 3년 동안 경쟁 엔진사의 안정적인 크랭크샤프트 수급이 가능하도록 △공급 거절 금지 △최소물량보장 △가격 인상 제한 △납기 지연금지 등을 설정하고, 향후 시장 상황을 고려해 필요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한화와 선박 엔진 양강 구도 재편

이번 승인을 계기로 조선업계는 HD현대와 한화의 양강 체제로 재편됐다. HD한국조선해양의 기업결합에 앞서 한화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조선업에 진출, 올해 초 선박용 엔진 시장 2위인 HSD엔진(현 한화엔진)까지 품으면서 선박용 엔진 제조업을 수직계열화하는 데 성공했다.

양사는 최근 국제해사기구(IMO) 환경규제 강화에 대비해 액화천연가스(LNG), 메탄올 등 친환경 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이중연료 추진(DF) 엔진 등 개발에 힘쓰고 있는 만큼 친환경 엔진 시장 선점을 두고 첨예하게 맞붙을 전망이다. 엔진은 선박 가격의 1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으로, 현재 글로벌 선박 시장은 해양 환경 규제 심화에 발맞춰 친환경 엔진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그간 한화엔진, STX중공업 등은 DF엔진, LNG(액화천연가스)과 같은 친환경 엔진 기술을 축적해 온 만큼 기술적인 메리트가 형성돼 있다.

나아가 엔진 수직계열화는 하반기 조선업계 핵심 사업인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 설계, 초도함 건조’의 수주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포석으로도 해석된다. KDDX는 2030년까지 해군의 차세대 주력 함정인 미니 이지스함(6t급) 6척을 발주하는 사업이다. 선체부터 각종 무기체계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구축함으로, 총사업비만 7조8,000억원에 달한다.

사실 두 대형 조선사 간 기싸움은 이번 엔진 수직계열화 외에도 오랜 기간 이어져 왔다. 2010년 초부터 KDDX 사업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KDDX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수행하면서 장군멍군을 이어 왔다. 개념설계가 함정 초안을 그리는 것이라면 기본설계는 함정에 탑재되는 무기체계 및 각종 장비 등을 조금 더 구체화한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에도 양사가 뛰어들면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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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수혈 가능성 및 시설 노후화는 과제

한편 이번 기업결합이 승인되면서 HD현대는 HD현대중공업 내 엔진기계사업부에 더해 대형과 소형 선박 엔진 포트폴리오를 모두 보유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글로벌 선박 엔진 시장은 국내 기업이 과점하고 있다. 최근 5년 기준 HD현대중공업이 35%의 점유율로 선두에 있고 중국 국영조선공사(CSSC)가 그 뒤를 잇고 있다. 한화엔진과 STX중공업의 점유율은 각각 13%, 2% 수준이다. 이번 인수를 통해 HD현대는 글로벌 점유율을 40% 안팎으로 끌어올려 1위를 굳히겠다는 구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2조7,098억원)와 STX중공업(2,450억원) 매출 합계는 2조9,548억원으로 한화엔진의 3.4배 수준이다.

양사 영업망 확대도 노려볼 수 있다. STX중공업은 주요 고객사로 시아멘시앙유(Xiamen Xiangyu) 등 중국 업체를 두고 있으며 올해 1분기 기준 중국향 매출은 전체 매출의 30%가 넘는다. 이외에도 케이조선, 대선조선 등 국내 중견 조선소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HD한국조선해양은 STX중공업 인수로 △다양한 출력의 엔진 생산능력 확대 △주요 부품 경쟁력 강화 △영업 시너지를 통한 수출 확대 등을 기대하고 있다.

엔진 부품 사업자기도 한 STX중공업을 품음으로써 엔진 부품에서 엔진, 선박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구조가 더욱 공고해지는 한편 밀려드는 수주 소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HD현대중공업의 엔진기계 부문 평균 생산 가동률은 올해 1분기 기준 142.9%에 달한다. 친환경 선박 엔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STX중공업이 이중연료 추진 등 친환경 엔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시너지로 이어질 대목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사업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추가 자금 수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HD한국조선해양은 STX중공업을 사들이고 나서 이중연료엔진, 디젤엔진 등 제품별 생산라인을 전문화해 생산능력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런 투자 과정에서는 기존 계획된 442억원의 지원금 외에 HD현대그룹 차원의 추가 지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4년 STX그룹이 해체된 이후 기업 회생절차를 거쳐 파인트리파트너스에 인수된 STX중공업은 이후 자산이 크게 줄었다. 금감원 공시에 따르면 STX중공업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021년 말 611억원에서 2022년 말 297억원, 지난해 190억원 등으로 지속 감소하는 추세다. 생산 실적도 저조하다. STX중공업의 선박 엔진 제조를 담당하는 경남 창원 1공장의 올해 1분기 평균 가동률은 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HD현대의 자금 관리 역량이 받쳐줘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10년의 정체기로 인한 시설 노후화도 과제로 꼽힌다. 이에 HD현대는 전반적인 노후 설비 교체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아울러 STX중공업에 대한 설비 증설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