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인도·태평양 협력 강화 “북·러 동맹에 큰 우려, 韓 역할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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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정상들, '75주년 공동성명'에서 北의 對러시아 무기 수출 비판
美,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4개국과의 군사·외교 협력 제도화 제안
러·우크라 전쟁 둘러싼 동북아 정세 변화, 韓 정부 입장에 관심 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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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들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북한 등 주변국과의 군사 동맹을 강화한 것을 두고 ‘국제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이에 대응해 한국을 비롯한 호주, 일본, 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 4개국과 방산 협력을 공식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가운데 나토 정상회의에 3년 연속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의 군사적·경제적 입지를 활용해 원전·방산·반도체 등 주요 산업 분야의 세일즈 외교를 적극 전개할 방침을 세웠다.

나토 정상들, 러시아에 군사 무기 지원하는 北·中 등 비판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은 ‘나토 창립 75주년 공동성명’을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위반하는 북한의 대(對)러시아 무기 수출을 강력히 규탄하며 큰 우려 속에 북한과 러시아 간 협력 강화를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정상들은 “북한과 이란이 포탄과 탄도미사일, 무인기(UAV) 등 직접적인 군사적 지원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지원하고 있다”며 “이는 유럽·대서양의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국제 비확산 체제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러시아와의 제한 없는 파트너십과 방산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결정적인 조력자(decisive enabler)’가 됐다고 비판했다. 정상들은 “중국은 러시아가 이웃 국가와 유럽·대서양 안보에 가하는 위협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러시아가 전쟁의 야욕을 지속하게 하는 물질적·정치적 지원 일체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핵무기 확충 의혹에 대해서는 “핵무기 위험을 줄이기 위한 국제 사회의 대화에 참여하고 우주와 사이버 공간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라”고 요구했다.

나토 정상들은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의 상황이 유럽·대서양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오는 11일 한국, 호주, 일본, 뉴질랜드를 비롯해 유럽연합(EU) 정상들과 합동 회의를 열어 ‘공통의 안보 도전과 협력 분야’를 논의하기로 했다. 또한 미국 정부는 이날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 4개국, 이른바 ‘IP4’와의 협력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공식 제안했다. 이는 나토와 미국, IP4 간의 협력을 상시적 협의체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Doorstep statement by the NATO Secretary General Washington Summit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나토 창립 75주년 공동성명’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사진=나토

러시아 견제하는 나토, 대통령 3연속 정상회의 초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중국, 북한, 이란 등 적대국들의 군사 동맹이 수면 위로 드러난 가운데, 이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한국의 외교 전략에도 서방 진영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관심 속에 윤 대통령이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3년 연속 초청을 받은 것이다. 특히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회동하는 등 양국이 군사적으로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나토 정상들은 윤 대통령의 입장에 주목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도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비회원국인 한국의 윤 대통령을 꼽았다. 블룸버그는 “한국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나토가 구하고 있는 무기의 방대한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며 “한국도 최근 북·러 간 동맹 강화에 대응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타임스도 “나토 정상들이 윤 대통령을 환대할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 역시 윤 대통령이 국내의 정치적 어려움에도 한·일 관계를 개선한 점을 반기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19일 윤 대통령은 북한과 러시아 간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에 대응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재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어 지난 8일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가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오롯이 러시아의 태도에 달려있다”며 “무기 거래, 군사기술 이전, 전략물자 지원 등 러시아와 북한 간 협력의 수준과 내용을 지켜보면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에 러시아는 한국과 북한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8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는 모든 국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기에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한국은 반러 제제에 동참하고 있는데 우리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는 국가와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가”라며 반문했다. 지난해 9월에는 러시아 외무부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직간접적으로 무기와 군사 장비를 공급하는 성급한 결정을 하면 양국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도 있다.

나토 정상회의서 ‘세일즈 외교’, 원전 수주 적극 공략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난달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속 동북아시아 정세가 급변하면서 주요국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한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활용해 러시아의 남진(南進)에 적극 반응하고 있다. 북·중 관계가 정체되는 사이 북·러 관계가 급속히 밀착되는 상황에서 지난달 한국과 중국이 서울에서 2+2 외교·안보 대화를 진행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쿠릴 열도(일본명 북방영토)에서 러시아와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의 경우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며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윤 정부 이후 한·미·일 관계가 복원된 가운데 미국도 북·러 정상회담 이후 역내 정세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또 북한은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 상황에서 한반도의 긴장을 조장해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군사·외교적 역학 관계 속에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주요국의 무역 규제와 패권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각국의 불이익과 반사이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정부는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독일, 캐나다, 일본 등 10여 개국 정상과의 양자 회담을 통해 반도체·원전·방산 분야의 세일즈 외교를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체코를 비롯해 네덜란드·스웨덴·핀란드 등 4개국과는 원전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체코는 전력 수요 증가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 위해 2022년부터 국제경쟁 입찰을 진행해 왔다. 대형 원전 최대 4기를 건설하는 체코 원전 사업은 한국수력원자력과 프랑스전력공사(EDF) 등 두 곳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 위해 마지막까지 경합 중이다. 최종 결과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윤 대통령은 세계 최고 시공 능력과 가격 경쟁력, 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를 통한 안정적 금융 지원을 내세워 체코를 공략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핀란드도 추가 원전 도입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며, 스웨덴도 2045년까지 최소 10기를 추가 도입할 예정으로 유럽 원전 시장은 계속 커지는 중이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핵심 광물 공급망 분야에 관해서도 공들이기에 나섰다. 스웨덴은 지난해 1월 북부 키루나 지역에서 100만 톤 규모로 추정되는 희토류 매장지가 발견되며 새로운 핵심 광물 공급처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