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영국·프랑스, ‘포퓰리즘’에 부채 확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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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과반 의석 차지한 정당 없이 '좌파 연합이 의회 다수당 등극
英도 14년 만에 노동당으로 정권 교체하며 공공지출 확대 전망
ECB, 佛 등 재정적자 심각한 유로존 국가에 재정준칙 준수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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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총선을 치른 영국과 프랑스가 선심성 공약을 내세운 ‘포퓰리즘’으로 인해 재정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외에도 일부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20개국) 국가들 역시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정부 지출이 늘어나 역대급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나서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에 대해 경고하고 있지만, 선거 이후 새로 들어서는 정부마저 막대한 공공지출과 감세를 예고하고 있어 당장은 이를 개선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다.

부채 심각한 英·佛, 재정적자도 수십 년 만에 최고치 근접

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둔 영국과 프랑스의 공공부채가 수십 년 만에 최고치에 근접했다”며 “최근 총선을 치른 두 나라에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독이 든 성배를 건네받은 형국”이라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국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과 재정적자의 비율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더욱이 긴축 정책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국방비, 노령 연금 등 공공 부문에 투입할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차입 비용이 급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WSJ는 총선이 촉발한 재정 리스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WSJ는 “재정적자가 심화해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인상하는 재정 절제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총선에 나선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키기보다는 새로운 지출 공약을 앞세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날 치러진 프랑스 총선 2차 투표의 출구조사에서 1위에 오른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은 물가 동결, 최저임금 대폭 인상, 각종 보조금과 급여 인상, 세수 감소 등을 제안했다. 3위를 한 강경우파 성향의 국민연합(RN)도 전면적 감세, 현 정부의 국민연금 수급 연령 인상안 철회 등을 내걸었다.

여기에 그 누구도 승자로 보기 어려운 총선 결과는 정국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프랑스 총선 결과를 보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범여권은 다수당을 차지하지 못했고 제1당에 오른 NFP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총선 중 각 정당은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감세와 공공 재정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결국 정치적 성향이 좌파와 극우로 극명하게 나뉘면서 의회가 공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정부 구성에 합의하지 못하고 레임덕이 가속화되면 국가 부채를 해소하려는 노력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영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4일 보수당을 제치고 14년 만에 집권에 성공한 노동당은 총선 기간 동안 국민건강서비스 등 공공 서비스에 더 많은 지출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왔다. 이를 두고 영국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nstitute for Fiscal Study, IFS)는 “노동당을 포함한 모든 주요 정당이 매니페스토에서 어려운 선택을 회피하고 있다”며 과도한 포퓰리즘을 비판했다. 이사벨 스톡턴 IFS 선임 연구원도 “새 정부 집권 후 공공부채 이자율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며 “전후 집권한 그 어떤 의회보다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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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 “유로존 국가들, 팬데믹·우크라 전쟁으로 재정 악화”

ECB도 유로존 내 일부 국가들의 부채 감축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달 ECB는 “유로존 국가들이 상당한 재정 문제를 겪을 위험이 있다”며 “해당국은 평균 GDP의 5%씩 줄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는 7,200억 유로(약 1,070조원) 상당의 지출을 감축하거나 추가 세입을 확보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지난 4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프랑스 등 7개국이 EU 재정준칙을 위반해 재정 지속가능성에 관련 우려가 확대된다고 비판하면서 조치를 예고했다.

EU는 1990년대 후반 그리스의 재정 위기를 계기로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안정‧성장 협약(Stability and Growth Pact)’이라 불리는 재정준칙을 운용하고 있다. 해당 준칙은 EU 회원국들의 연간 재정적자와 부채비율이 각각 GDP의 3%, 60%를 초과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 20년간 유지돼 오던 재정준칙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한시적으로 중단됐고 유로존 국가들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사상 최고 수준인 90%까지 높아졌다.

실제로 지난해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GDP의 5.5%로 EU의 한도인 3%를 넘겼고, 이탈리아도 GDP의 7.4%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ECB는 “유로존 국가들이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에 지출이 늘면서 부채가 급증했다”며 “앞으로 재정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CB에 따르면 유로존 국가들은 고령화, 국방비 증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부터 2070년까지 GDP의 평균 3%를 추가 투입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각국은 2070년까지 부채 수준을 EU 한도인 GDP의 60%까지 낮춰야 한다.

이에 대해 ECB는 “각각도 충분히 어려운 일인데 이를 동시에 해야 한다”며 “특히 부채가 많아서 고금리에 따른 위험을 안고 있는 국가들은 즉각 행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당국은 GDP의 평균 2%를 즉시, 그리고 영구히 추가 절감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나라별로 보면 슬로바키아와 스페인은 2070년 목표 달성을 위해 국가 부채를 각각 GDP의 10%와 8%를 절감해야 하고 크로아티아, 그리스 등은 2% 미만으로 줄여야 한다. 여기에 파리기후협약의 목표가 지켜지지 않으면 기후변화 대응 비용이 더해져 국가의 재정 부담이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 위기 극복하고 ‘경제 우등생’으로

한편 역대급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영국, 프랑스와 달리 2010년대 초반 유럽의 재정 위기 당시 어려움을 겪었던 남유럽 국가들은 최근 유로존 내 ‘경제 우등생’으로 꼽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U 당국은 올해 유로존의 전체 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데 반해 스페인과 그리스의 성장률은 2%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WSJ도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스 등 유럽 남부 국가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광산업 호조를 발판으로 유럽 경제의 회복세를 이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유럽발 재정 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된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은 국가명의 머리글자를 묶어 ‘PIGS’로 불리며 한때 무책임하고 게으르며 비생산적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팬데믹 이후 관광산업 호조와 더불어 수년에 걸친 경제 자정작용을 바탕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 통계기구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의 1분기 GDP가 직전 분기 대비 0.3% 증가한 가운데, 스페인·포르투갈의 성장률은 각각 0.7%로 유로존 내에서 가장 높았다. 반면 주요국인 프랑스·독일의 성장률은 각각 0.2%에 그쳤다.

GDP 대비 부채비율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그리스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2018년 9월 187.4%를 기록한 후 팬데믹 대응의 여파로 2021년 3월 210.3%까지 올랐으나, 지난해 12월에는 161.9%까지 줄었다. 포르투갈의 경우 2021년 3월 138.1%에서 지난해 12월 99.1%로, 스페인은 2021년 3월 125.3%에서 지난해 12월 107.7%로 하락했다. 이에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10월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투자 적격인 ‘BBB-‘로 상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