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용등급 유지 결정한 피치, 국가채무·경기 침체 속 ‘아슬아슬’ 방어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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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용평가사 피치, 한국 국가신용등급 유지 결정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불어난 국가채무, 아슬아슬한 AA-
신용 위험 키우는 경기 침체 기조, 이대로 가면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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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올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 안정적(Stable)’으로 유지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피치는 이번 유지 결정이 △견고한 대외건전성·거시경제 회복력 △수출 부문의 역동성 △지정학적 리스크·거버넌스 지표 부진 △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문제 등을 반영한 결과라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당장의 신용등급 유지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에는 국가 채무 증가, 경기 침체 등 국가신용등급 하락 위기가 여전히 산재해 있다는 지적이다.

피치, 악재 속에서도 긍정적 전망 제시

피치는 올해 한국이 수출 회복에 힘입어 경제성장률 2.1%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수출 반등을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부문은 강력한 AI 관련 수요 등에 따라 내년까지 긍정적인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예측이다. 재정적자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1.9%를 기록, 지난해 재정적자(-2.0%) 대비 소폭 개선될 것이라 봤다. 올해 경기 회복에 따라 세수가 점차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가 총지출 증가폭을 최대한 줄이며 재정적자 억제에 힘쓰고 있다는 평가다.

기준금리는 올해 하반기부터 인하하기 시작해 연말 3.0%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피치는 지난 몇 년간 지속된 고금리 기조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대한 부담을 가중했지만, 정부가 PF 대출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PF 보증을 확대하며 관련 위험을 완화했다고 짚었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지난해 GDP 대비 2.1%에서 올해 2.8%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022년 이후 꾸준히 감소 추이를 보이고 있지만, 이는 경상지급액 전체의 6.2개월분으로 충분한 수준이라고도 평가했다. 불어나는 부채와 경기 침체 기조에도 불구,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하며 등급 유지를 결정한 것이다.

불어나는 국가채무는 ‘신용 뇌관’

주목할 만한 부분은 우리나라가 급격한 국가채무 증가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신용등급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 피치는 2011년 이후 12년 만에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전격 강등한 바 있다. 당시 피치는 보고서를 통해 “향후 3년간 예상되는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의 악화 등을 반영한다”며 강등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미국 정치권이 20여 년간 부채 한도 상향 문제를 놓고 대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임박해서야 겨우 상황을 해결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목했다. 결국 부채가 미국 신용등급을 끌어내린 결정적 이유였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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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시 국가 부채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확장재정으로 인해 국가부채 규모가 매섭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정부의 ‘2022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2022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1,067조7,000억원(약 8,000억 달러)으로 치솟았다. GDP 대비 49.6% 수준이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지난해 10월에는 1,105조5,000억원으로 40조원 가까이 더 늘었다.

이에 국제통화기금(IMF)은 보고서를 통해 차후 한국의 국가채무 문제가 한층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28년 58%까지 급증, 비(非)기축통화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수준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기축통화국은 IMF가 해당 보고서에서 선진국으로 분류한 37개국 중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8대 준비 통화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한국 등 11개국)를 말한다.

좀처럼 꺾이지 않는 경기 침체 기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찾아온 경기 침체 기조 역시 신용등급 하락을 부추기는 위험 요인이다. 실제 미국의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는 지난해 말 중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중국의 경기 침체 대처·지방 정부 지원을 위한 재정 부양책, 급격한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이 중국 경제에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더해 무디스는 지난 1월 중국 지방정부의 자금조달 특수법인인 ‘LGFV(Local Government Financing Vehicle)’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하기도 했다. 경기 침체로 인한 지방정부의 재정 위기가 신용등급 악화를 초래한 것이다. 실제 중국 지방정부 적자는 2022년 기준 11조6,221억 위안(약 2,198조원)으로 2010년 대비 3.5배 확대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역시 안심할 수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상황 변화에 따라 금세 미끄러질 수 있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으며, 언제든 2012년부터 10년간 유지해 오던 ‘AA-‘ 등급을 놓치게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 상황 악화에 따른 압박이 점차 가중되는 가운데, 정부는 복합적인 경제 위기를 이겨내고 현재의 신용 수준을 지켜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