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무뎌진 ‘공정거래위원회’, 쿠팡·SPC 소송전 줄줄이 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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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갑질 의혹’ 벗었다, 33억원 과징금 취소 판결
SPC도 600억원 과징금 불복 소송서 일부 승소
공정위의 ‘아니면 말고’ 식 과징금 부과 관행 결과 
Financial Markets Wall Street Coupang IPO
김범석 쿠팡 의장/사진= 뉴욕증권거래소(NYSE)

쿠팡이 LG생활건강 등 납품업체들을 상대로 한 갑질 의혹을 벗었다. 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가 ‘갑질 행위’를 이유로 쿠팡에 부과한 과징금을 취소하라고 판결하면서다. 이보다 하루 앞서 SPC그룹도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한 가운데, ‘경제 검찰’을 자처하며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를 손보겠다고 칼을 빼든 공정위는 체면을 단단히 구기게 됐다.

쿠팡, 공정위 상대 승소 “과징금 및 시정명령 전부 취소”

1일 서울고법 행정7부는 쿠팡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을 모두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2021년 8월 쿠팡이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2억7,000만원을 부과한 바 있다. 이는 2019년 5월 LG생활건강이 쿠팡이 생활용품과 코카콜라 납품가를 낮추라고 강요했다며 공정위에 신고하면서 이뤄진 조사 결과 내려진 처분이었다.

당시 공정위는 쿠팡이 자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온라인몰에만 납품업체들에 판매가격을 인상하도록 요구했으며, 쿠팡 측 마진손실 보전을 위한 광고 구매도 요구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쿠팡은 이에 불복해 이듬해인 2022년 2월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쿠팡은 이날 법원 판결에 대해 “빠르게 뒤바뀌는 유통시장의 변화를 고려한 판단이라 생각되며 유통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당시 소매시장 점유율 2%에 불과한 신생 유통업체가 업계 1위인 대기업 제조사를 상대로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설명도 부연했다.

쿠팡에 앞서 SPC도 공정위의 시정명령,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낸 소송에서 최근 승소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서울고법 행정6-2부는 SPC삼립 등 SPC그룹 5개사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ㆍ과징금 등 취소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020년 7월 공정위는 SPC가 총수 일가의 개입 하에 2011년 4월∼2019년 4월 그룹 내 부당 지원을 통해 삼립에 모두 414억원 상당의 이익을 몰아줬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엔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인 삼립의 주가를 높여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고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었다. 공정위는 계열사들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는 동시에 허영인 SPC그룹 회장, 황재복 대표이사 등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판매망 양도와 상표권 무상제공 등 대부분 시정명령을 취소하고 647억원의 과징금도 전액 취소하라고 명령했다. 공정위의 통행세 거래에 대한 처분 중 밀가루 거래에 대해선 일부 위반사항이 있음이 인정된다면서도 과징금 산정 부과기준은 적법하다고 볼 수 없어 재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과징금 패소로 토해낸 금액만 5,500억원

잇따른 패소에 공정위의 무리한 기업 손보기 관행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의 과징금 처분은 기업 부담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혈세까지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그간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다시 기업에 환수한 금액은 수천억원대에 이른다. 지난해 10월 16일 공정위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소송 패소 등의 사유로 기업 등에 돌려준 금액(순환급액)은 지난 2017년에서 2023년 9월까지 총 5,51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과징급 환급사유로는 행정소송, 추가감면 의결, 직권취소, 의결서경정, 변경처분 등이 있다. 특히 공정위가 기업 등에게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돌려주는 과정에서 발생한 환급가산금(이자)만 약 444억원으로, 전체 환급과징금의 8%를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무리한 조사로 잘못 부과된 과징금을 기업에 돌려주는 과정에서 국민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동기간 공정위의 과징금 결정에 대해 피심인이 제기한 소송에서 공정위가 일부만 승소하거나 패소한 사건은 105건에 달한다. 해당 사건과 관련된 공정위 소관법률은 공정거래법이 67건으로 전체건수의 63.8%를 차지하며 제일 많았고, 하도급법 20건, 소비자보호관련법 10건 순이다. 위반행위유형별로는 부당공동행위가 47건으로 전체건수 대비 약 44.7% 를 차지하며 제일 많았고 하도급위반행위 20건, 불공정거래행위 15건 등이 뒤를 이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과징금 처분 관련 법정 다툼에서 공정위가 참패하는 이유는 불공정거래 조사와 과징금 산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공정위의 패소 원인 상당수가 충분한 증거 없음 또는 근거 없음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갈수록 위상이 추락하는 공정위가 패소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충분한 입증자료를 확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