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하면 정규직이지만 정작 취업이 안 되는 현실, ‘직고용’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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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부담에 직접 제빵 나선 파리바게뜨 점주들, 제빵사 일자리 25% 감소
'직고용'이 불러온 대참사: 프랜차이즈 적자 누적, 점주 제빵 부담, 제빵사 취업 불가
정부의 무리한 '정규직화' 시도, 취업 약자 고용시장 주변으로 내몰았다
파리바게트폴리시

파리바게뜨의 모기업인 SPC그룹 소속 PB파트너즈가 하청업체 소속이던 제빵사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한 지 5년 만에 제빵사 수가 25%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건비 부담에 제빵사를 쓰지 않고 직접 빵을 굽겠다고 나선 점주가 3배가량 늘어난 탓이다. 문제는 제빵사 수요가 줄어들면서 신규 채용 규모도 3분의 1토막 났다는 점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 문재인 전 정부의 ‘무리한 정규직 전환’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제빵사 위한 직고용 제도, 취업턱만 높였다

6일 업계에 따르면 SPC그룹의 PB파트너즈 소속 제빵사는 2018년 12월 말 5,548명에서 지난달 말 4,180명으로 약 5년 만에 24.6% 줄었다. 신규 채용도 급감했다. PB파트너즈는 지난 2019년에는 630명의 신규 제빵사를 모집했지만 올해 신규 채용은 10월 기준 195명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 같은 채용 감소는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제빵사 없이 점주가 직접 빵을 굽는 매장이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SPC그룹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 파리바게뜨 매장 3,428개 가운데 점주가 직접 빵을 굽는 매장은 918개다. 이는 지난 2018년 말 283개에서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에 대해 점주들은 지난 2018년 ‘제빵사 직고용’이 시행된 이후 제빵사 인건비가 급등해 직접 제빵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현재 경북 양산 지역에서 파리바게뜨 매장을 운영하는 점주 A씨는 “2017년 이전까지는 제빵사 한 명당 400만원의 비용을 지급했었지만 직고용으로 전환된 후 용역 비용이 500만원 대로 뛰었다”며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커져 점주들 사이에선 제빵을 직접 하지 않을 경우 돈을 벌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제빵사 직고용은 지난 정부가 SPC그룹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강조하며 압박했던 부분이다. 지난 2017년 9월 고용노동부는 SPC그룹에 “파리바게뜨의 제빵사 고용 형태가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며 약 162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정치권과 양대 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은 원청업자인 SPC그룹이 하청업자 제빵사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제빵사 직고용을 압박했다.

결국 이듬해 1월 SPC그룹은 과태료를 면제받는 조건으로 제빵사 고용을 목적으로 한 PB파트너즈를 설립한 뒤 하청업체 소속 제빵사 5,548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이후 PB파트너즈는 해마다 영업손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직고용 전환 첫해인 2018년 약 106억원의 영업손실을 시작으로 지난해 67억원 등 매년 50억~9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즉 ‘고용 안정’이라는 선의를 내세운 무리한 정규직 전환이 프랜차이즈 회사와 가맹점 점주, 제빵사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이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생산성 향상 없이 인건비만 높아질 경우 고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전 정권의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인한 부작용이 제빵업계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각에선 직고용을 비롯한 지난 정권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시도가 제빵업계뿐만 아니라 취업 약자들의 고용 안정성을 떨어뜨렸단 비판도 제기된다. 한 예로 지난 2018년 서울교통공사는 취업 약자들의 고용을 돕겠다는 정부의 미명 하에 무기계약직 1,285명을 일반직으로 전환한 바 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에서 근무하는 ‘고졸 이하 직원’ 비중은 정규직 전환이 시작되기 전인 2017년 말 23%에서 지난해 15%까지 내려앉은 반면, 동기간 ‘대졸 이상 직원’ 비중은 54%에서 64%로 급증했다. 아울러 당초 서울교통공사의 조리직은 여성 및 저학력 장년층으로 구성돼 있었지만 정규직화가 시작된 이후 남성·고학력자 입사자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2020년 공채 결과 입사자 53명 중 47명이 대학 졸업자였으며, 남성 입사자(42명)가 여성 입사자(11명)의 4배에 육박했다.

무리한 정규직화 시도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20년 인천공항공사는 보안검색·항공보안·소방대 등 공사 소속 비정규직 인원을 인천공항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인천공항공사에서 돌연 정규직 전환이 아닌 직고용 방식을 택하면서 정규직 전환 대상자 일부가 탈락하고 직장을 떠나게 됐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 인사 관계자는 “공공기관에서도 무리한 정규직으로 인해 부작용을 겪는데, 민간 기업이라고 다르겠냐”며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노동법에서 정하는 규정 밖에 있는 부분들은 민간 기업의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는 걸 정부가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