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돌아온 집중호우에도 여전한 ‘뒷북 대응’ 17일까지 사망자 41명

전국 강타한 집중호우, 허술한 대처에 사망 41명, 실종 9명 발생 尹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관계 당국 질타, 국조실 감찰 진행한다 작년 극심했던 피해에 올해 철저히 대응한 수도권, 지방 농어촌지역도 개선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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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집중호우로 인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의 산사태 피해 현장 점검에 나서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은 6박 8일의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곧바로 집중호우 대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관련 부처에 기민한 대응을 지시했다. 폭우에 충분히 대응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자체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집중 호우 예고에도 충북·경북 인명 피해 발생

지난 주말 충청과 경북권에 기록적인 폭우를 예상한 기상청의 대피 권고에도 해당 지역들의 피해가 막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에 따르면 17일 오후 11시 기준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는 41명, 실종자 9명, 부상자 34명이다. 이는 지난 2011년 중부권 집중호우로 인한 78명 사망 이후 12년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사망자 지역별로는 경북 지역이 ‘예천 산사태’로 19명, 충북 지역이 ‘오송 지하차도 사건’으로 17명, 그 외 충남 4명, 세종 1명으로 파악됐다. 이번 호우로 일시 대피한 사람은 전국 16개 시도 120개 시군구에서 6,532가구 1만976명이며, 충남·충북·경북·전북을 중심으로 공공시설 740건, 사유 시설 453건의 피해가 집계됐다.

집중호우로 인해 철도 운행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15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오전 9시부터 무궁화호와 ITX-새마을호 등 모든 일반열차의 운행을 임시 중단했으며, 중앙선·중부내륙선을 운행하는 고속열차(KTX-이음)의 운행도 중지했다. 코레일 측 관계자는 “이번 집중호우로 약화된 지반을 재점검한 뒤 안전을 확실히 확보해 열차 운행을 재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한편 리투아니아·폴란드·우크라이나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윤석열 대통령은 중대본 회의에서 “현장에서 재난 대응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관계 당국의 허술한 대응을 질타했다. 사전 통제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오송 지하차도(궁평 제2지하차도) 참사’ 사건을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국민의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집중호우가 올 때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둘러보고 미리미리 대처해 달라”며 현장점검을 지시했다. 특히 충북 오송과 경북 예천 등지에서 사망·실종자가 다수 발생한 일에 대해서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군경을 포함한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적극적인 구조와 재건에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회의를 마친 윤 대통령은 곧바로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일대를 찾아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이재민을 위로하며 신속한 복구를 약속했다.

매뉴얼대로 했다? 어처구니없는 사고

한편 이번 집중호우로 인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경우 ‘예견된 인재’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일 충북 청주시 제2궁평 지하차도는 인근 미호강 둑이 터지며 물이 밀려들기 시작한 지 불과 15분 만에 완전히 침수됐다. 이에 대해 강종근 충청북도 도로과장은 “다리 공사로 인해 임시로 둑을 쌓았는데, 거기가 터져서 수해가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고 밝혔지만, 임시 둑 자체가 너무 허술하게 만들어졌다는 주민들의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조원철 연세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일차적으로 미호강 임시 제방이 공학적으로 홍수에 대해서 설계했는지 안 했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만일 홍수에 대해서 설계했다 하더라도 밑에만 모래주머니를 깔아 흙을 쌓았기 때문에 물이 밀려들면 바로 쓸려 내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폭우가 예고된 상태에서 7월까지 임시 제방 작업을 진행한 것 또한 패착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충청북도는 기상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하차도 차량 통제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홍수 대응 매뉴얼 상 지하차도 진입 차량을 통제하려면 50cm 이상 물이 들어차야 하는데, 이번 사고는 침수 직전까지 물이 차지 않아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에 조 교수는 “당시 기록에 따르면 15일 새벽 5시에 대홍수 심각 단계가 내려졌고, 사고 30~40분 전에 현장 감리단장이 경찰에 교통통제를 요청했지만 어떤 사전 조치도 없었다”며 “매뉴얼은 사후 조치가 아니라 사전 예방이 핵심인데, 사고 직전에 분명한 재해 사인이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고 못 박았다.

이외에도 청주시 버스 기사들은 지하차도에서 참변을 당한 747번 버스가 원래 다니던 길이 아닌 지하차도로 길을 우회한 점이 의문이라고 전했다. 기사들에 따르면 버스 노선은 기사의 판단대로 변경할 수 없고, 청주시나 영업부에서 지정해 주는 노선을 반드시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서울 왕십리 뉴타운 도선동 아파트단지 도로변에 설치된 친환경 ‘스마트 빗물받이’ 시스템/사진=내 손안에 서울

지난해에도 있었던 인재(人災), 지방 재난대응 체계 마련 시급

게다가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 8월 8일부터 11일까지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특히 용인 전역에는 평균 400mm에 가까운 비가 쏟아져 하천 범람과 하수관 역류로 인해 주택과 상가 등 수십 채가 물에 잠겼고, 하천변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는 유실되거나 파손됐다. 뿐만 아니라 용인 처인구 모현읍 매산1리 고속도로에서 유출된 토사로 인해 주택이 침수된 전례도 있다.

한 전문가는 용인 피해 사례는 명백한 인재라며 “이미 한 차례 토사 유출 피해가 있었음에도 주민들의 우려를 무시한 건설업체와 관리·감독기관, 용인시의 행태가 피해를 키운 것”이라고 토로했다. 저지대로 알려져 있는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고기교 역시 잦은 침수로 인해 당시 주민들이 확장 및 재가설을 요구했지만, 용인시가 예산 부족과 교통체증 유발 우려를 이유로 미룬 것이다. 결국 지난해 폭우로 고기교는 용인에서 가장 큰 손해를 입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당시 안전불감증에 빠져 국민의 생명을 경시했다는 비판까지 받았던 용인시는 올해 고위험 지역에 차수대를 설치하고, 재난 대응체계를 수리하는 등 집중호우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서초동 진흥아파트는 주차장 침수, 단수, 단전 등의 피해를 봤으며, 대치역은 완전히 물에 잠겼다. 강남역 일대 도로에서는 순식간에 차오르는 빗물에 운전자들이 차량을 버리고 대피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도 허리춤까지 물이 차올라 인근 상인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안겼다. 특히 서울 시내 반지하의 침수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가 막심했다. 이에 서울시는 올해 풍수해 대비 긴급구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현장에 인력 및 장비를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했다. 또 지난해 빗물받이 관리 미흡으로 인해 침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에 담배꽁초, 낙엽 등으로 막히는 빗물받이가 없도록 각별히 관리하고 있다.

집중호우와 같은 자연재해는 인간이 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기상청과 많은 언론으로부터 거듭 예고된 데다, 지난해 동일한 전례가 있는 만큼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경북 지역의 한 시민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우리나라는 가시적인 피해를 입으면 그제서야 대처한다”며 보다 강력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추가적인 폭우가 예고되고 있는 만큼 두 번 다시 이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방 농촌 지역의 둑 관리 및 홍수 대응 매뉴얼 개편, 재난 대응 시스템 체계 점검 등 철저한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