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공서열형 임금 등 ‘전통적 고용관행’ 버리기 시작한 일본, 엔데믹에도 변화의 바람 이어질까

대기업 중심으로 경력직 채용 늘고, 전직희망자수도 역대 최고 수준 ‘인력난 심화 및 디지털 전환’ 등에 따른 전문인력 수요 증가가 변화 일으켜 다만 단기간 내 큰 변화는 어려울 전망, 새 고용형태 보완 등 제도 뒷받침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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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주요기업들이 경력직 채용비율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있는 인재 고용을 늘리는 등 연공서열 임금체계 형태의 고용관행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고령화로 인한 인력난 심화와 디지털화에 따른 전문인력 수요 증가 현상 등이 변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일본 특유의 고용관행이 단기간 내 크게 변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력직 채용비율 확대, 직무형 고용등 변화 바람 불어

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최근 일본기업의 고용관행 변화 동향’에 따르면 최근 일본의 고용관행 변화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특히 올해 전체 채용자수 가운데 경력직 채용비율이 2016년도 비율 대비 2배 이상 증가하면서 역대 최고 수준인 37.6%까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식 고용관행의 대표 격이었던 3대 대형은행(미쓰비시UFJ, SMBC, 미즈호 은행)과 히타치제작소, 후지쯔 등 전기전자·IT 부문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형은행들의 경력직 채용비율은 2019년도 7%에서 불과 4년만에 35% 이상까지 확대됐다. 주요 대기업들도 특정 직무에 필요한 스킬과 경력 등을 보유한 인재 위주로 채용하는 직무형 고용을 확대하는 추세다.

근로자들의 이직 수요도 급증하는 추세다. 일본 총무성 등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직희망자수는 968만 명으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과거 비정규직 중심으로 늘어났던 전직희망자수가 2020년 이후부터는 정규직에서도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수 대비 전직희망자수가 14.4%까지 증가했지만, 실제 전직비율은 아직 낮은 수준이며 젊은 세대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괄채용, 장기고용등 전통적 고용관행이 깨지기 시작한 이유

과거 일본의 주요 기업들은 정규직을 중심으로 ‘멤버십형 고용’을 유지해 왔다. 멤버십형 고용은 근로계약 시 직무, 근로 시간(잔업 여부), 근무지 등을 정하지 않고 회사가 이를 결정하는 구조로 대졸예정자 일괄채용이나 장기고용 위주의 채용과 연공서열 임금체계 등이 이를 대변한다.

이러한 일본식 고용관행은 주요국과의 비교에서 낮은 노동 이동성을 보여왔다. 특히 평균근속연수(12.3년)가 OECD 회원국들의 평균치(8.3)를 크게 상회하며, 연령별 임금 차 또한 장기근속을 통한 임금 상승 경향이 높다는 특징이 두드러졌다. 다만 이러한 전통적 고용관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키는 문제와 함께 정규직의 장시간 근로문화를 형성하는 문제를 낳기도 했다.

그렇다면 최근 일본의 고용시장의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현지 전문가들은 인력난 심화와 기업의 디지털화 진전을 꼽았다. 닛케이기초연구소 관계자는 “최근 일본에선 디지털·전기전자 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우위 확보를 위한 인재 유치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문인력 수요가 증가한 현재 젊고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기업들이 경력직 채용과 직무형 고용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임금체계에선 유능한 인재 영입이 어려운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연공서열형 등의 임금체계는 전문성과 생산성이 높은 인재라도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낮은 임금을 적용받게 되는데, 이는 결국 결정적인 이직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노동 수요가 높은 고용시장 환경에서 이들이 쉽고 빠르게 이직할 수 있는 점도 기업들의 입금에 대한 태도 변화가 일어난 이유로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증가하면서 직무형 고용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점도 한몫했다. 여기에 더해 일본 정부도 노동 이동성 개선을 통한 임금 상승을 추진하기 위해 직무급 도입 등 고용관행 변화를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마쓰야마시

노동시장 인프라 구축, 인사권 축소등 제도적 노력이 긴요

다만 전문가들은 멤버십형 고용이라는 일본 특유의 고용관행이 단기간 내 크게 변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새로운 고용 형태가 정착되기 위해선 몇 가지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먼저 고용시장 인프라 구축, 인사권 축소 등의 제도적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솜포플러스 등 현지 금융권에선 “외부노동시장 발달이 미흡한 일본 고용시장 특성상 구인 포스트 관련 정보, 스킬업 기회, 노동 이동 시 안전망 등이 부족하다”며 “미국 등 주요국의 노조나 협회가 직업훈련 등을 실시하는 것처럼 이 같은 사회 안전망을 조속히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직무형 고용과 직무급 도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입금체계와 고용 형태에 변화를 주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의 대다수 기업은 연공적 성격이 강한 임금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직무급 정착과 고용 유연화만으로는 임금이 오르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할 때 임금인상과 관련해 제도적인 지원책은 새로운 고용 형태의 변화 흐름을 가속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일본 기업의 고용관행 변화 흐름을 우리 기업 노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환경도 일본만큼이나 인사 및 임금 제도의 연공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와 고령화로 인해 정년 폐지 및 연장에 대한 논란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제도 개편을 통해 회사의 혁신과 고령 인력의 효율적 활용 등을 동시에 일궈낸 일본 기업들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은 단순히 인건비 효율성 차원이 아닌 격변하는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장기 전략의 초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