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은 줄고 빚은 쌓인다, 수출 부진·고금리에 국내 기업 ‘초비상’

매출액 성장 둔화하는 가운데 총부채·이자비용 급증, 시장 긴장감 고조 유동성 말라붙은 글로벌 시장,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파산 러쉬’ 일각서는 반도체·대중국 수출 회복되며 ‘저점’ 탈출할 것이라는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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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들의 재정 상태에 ‘빨간불’이 켜졌다. 수출 부진으로 매출액 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이자비용이 뛰며 생존에 위협을 겪는 기업이 급증한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는 12일 한국평가데이터(KoDATA)와 상장사 1,612곳(대기업 159곳·중견기업 774곳·중소기업 679곳)을 대상으로 재무 상황을 분석,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 전반이 유동성 부족으로 위기에 빠진 상황이다. 성장은커녕 생존조차 버거워 파산을 택하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지금이 우리나라의 ‘경제 저점’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대중국·반도체 등 주요 수출길이 점차 열리고 있는 만큼 점진적으로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성장 정체, 이자·부채 급증 ‘진퇴양난’

대한상의는 크게 ▲성장성 ▲수익성 ▲안정성 ▲활동성 등 4개 부문에 걸쳐 기업들의 재무 상황을 조사했다. 조사 대상 상장기업들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12.1% 증가했으나, 분기를 거치며 성장세가 점차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의 매출 성장세는 지난 2020년 2분기부터 6분기 연속 성장을 기록하다가 2021년 4분기부터 정체 상태다.

총부채는 10.4% 증가하며 총자산 증가폭(6.5%)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 증감률은 전년 대비 34.2%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정점을 찍었던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22.7%, 60.8%의 성장을 보인 것과는 대조되는 수치다. 영업이익 증감률을 기업 규모별로 살펴보면 대기업(–44.1%), 중견기업(-9.2%), 중소기업(–3.1%) 순으로 낙폭이 컸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의는 “지난해 4월 이후 무역수지가 15개월 연속적자를 기록하는 등 수출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의 최전선에 있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한편 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매출액영업이익률은 전년보다 3.2%p 하락한 4.5%, 당기순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매출액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3.0%p 하락한 3.6%로 나타났다.

부채비율은 전년보다 4.8%p 상승하며 79.9%를 기록했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은 같은 기간 77.5%(+4.6%p), 중견기업은 오른 96.2%(+6.2%p), 중소기업은 44.5%(+0.4%p) 수준이었다. 차입금의존도는 19.2%로 전년보다 0.5%p 상승했으며, 총자본에서 부채를 제외한 자기자본비율(자기자본/총자본)은 전년보다 1.5%p 하락한 55.6%를 기록했다. 이는 최근 4년 중 최저치다.

이자비용은 14조2,0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보다 31.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고금리 기조로 인해 기업의 부담이 크게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은 전년도(10.1배)의 절반 수준인 5.1배에 그쳤다.

기업의 활동성을 측정하는 지표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자산에서 재고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4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인 7.7%였다. 재고자산이 매출로 이어지는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재고자산회전율은 10.6회로, 2019년 11.2회, 2020년 11.1회, 2021년 11.7회 대비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기업건강도 분석 결과/출처=대한상공회의소

자금 경색으로 글로벌 시장 ‘휘청’

국내 기업이 위기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수출 저하가 꼽힌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2% 감소한 522억4,000만 달러(69조1,135억원)를 기록했다. 5월 무역수지는 21억 달러(2조7,115억원) 적자를 기록하며 15개월 연속 하향곡선을 그렸다. 올해 누적 적자액은 271억7,000만 달러로 이미 지난해 적자 규모(477억8,500만 달러)의 절반을 넘어섰다.

수출이 막히고, 시장 유동성이 급속도로 말라붙자 기업들은 성장은커녕 ‘생존’조차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이는 비단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 미 연준(Fed)의 긴축이 은행들의 연쇄 파산을 낳자, 미국 은행들은 ‘뱅크런’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 줄줄이 대출을 축소했다. 또한 자금 경색으로 인해 휘청이던 미국의 대기업들은 최근 잇따라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특히 저금리 시기에 과도하게 부채를 늘린 기업들의 경우 금리 인상에 따른 신용 경색으로 인해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 마켓워치는 지난 5월 “최근 48시간 동안 부채가 5,000만 달러 이상인 기업 중 7개가 파산을 신청했다”며 “2008년 이후로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지금이 ‘경제 저점’이다? 반등 기대

한편 일각에서는 지금이 우리나라의 ‘경제 저점’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일 ‘6월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반도체 수출 금액과 물량 감소세가 일부 둔화되는 가운데, 대(對)중국 수출 감소폭이 점차 축소되는 등 수출 부진이 다소 완화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반도체 수출과 대중국 수출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특히 크다.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올해 1~4월 반도체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4% 수준이었으며, 올해 1분기 대중국 수출 비중은 19.5%에 달했다.

올해 들어 반도체 수출은 매월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왔다. 하지만 최근 그 감소폭이 점차 줄어드는 양상이다. 지난 1월 전년 대비 44.5%에 달하던 반도체 수출액 감소폭은 지난달 -36.2%까지 축소됐다. 대중국 수출액 감소폭 역시 4월 -26.5%에서 5월 -20.8%까지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선언, 소비자물가 상승률 하락 등으로 소비심리가 회복되고 있다는 점 역시 경기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 경제 회복이 지연되거나,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부진할 경우 하반기에도 경기 회복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제기된다.

한편 정부는 상반기 경기 부진을 반영해 당초 1.6%로 잡았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달 중 수정 및 발표할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IMF가 지난 4월 세계경제전망(WEO)을 통해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1.5%로 0.2%p 하향했다는 점을 고려, 정부 역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소폭 하향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국내 시장에 대한 국제기구의 기대가 고꾸라진 가운데,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기업들은 언제쯤 바닥을 딛고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