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보스턴 클러스터’ 만들겠단 尹, 정작 ‘인재’는 어디에?

정부, ‘민간 주도’ 바이오 생태계 조성한다 한국판 클러스터 가능할까?, “인재도 시설도 부족” 제약 요소 너무 많은 韓, “이제라도 해외서 경험 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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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전략 회의에 앞서 뇌전증 감지 웨어러블 기기인 ‘제로 글래스’를 착용해 보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윤석열 정부가 불합리한 규제를 해소해 국내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바이오 클러스터’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보스턴 클러스터를 벤치마킹한 ‘한국판 보스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업종 규제를 풀고 바이오의약품 핵심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는 등 첨단기술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 ‘한국형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할 것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는 지역 소재 명문대인 MIT와 하버드대학을 중심으로 연구소, 병원, 1,000개 이상의 기업이 군집한 세계적인 바이오 단지다. 특히 모더나와 화이자 등 글로벌 바이오 기업과 벤처캐피탈(VC)이 모인 켄달스퀘어는 담장이 없는 타운 형태로 조성돼 있다. 정부는 이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를 벤치마킹해 한국판 보스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했다.

정부는 우선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지자체와 민간 주도로 자생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면 정부 차원에서 재정, 세제를 패키지 형태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클러스터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또 보스턴처럼 클러스터에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법률·회계 등 사업지원 서비스 기업, 창업 보육 기관 등이 집적될 수 있도록 입주 업종 제한 규제를 완화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정부출연연구기관 유휴 부지 용도 변경과 클러스터 개발·관리 계획을 당장 올 하반기에 개정하고 스타트업에 법률·회계·컨설팅 기업 서비스 이용 바우처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나갈 방침이다. 특히 클러스터 활성화를 위해 MIT 등 해외 우수 연구기관과 협력을 도모하고 기술경쟁력 제고에도 나선다. 아울러 해외 우수 연구기관과 바이오 외 △수소 △반도체 △차세대 전지 △디스플레이 △양자 △탄소중립 △원자력 △우주 등 여러 방면에서 협업을 끌어내겠단 계획도 세웠다.

정부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보스턴 클러스터의 ‘벤처 생태계’다. 정부는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통해 자금을 최대한으로 끌어모을 작정이다. 우선 신생 스타트업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액셀러레이터(AC) 중심의 ‘지역 엔젤투자 재간접 펀드’를 올해 200억원 규모로 조성하고, 민간 출자자의 비상장 투자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모태펀드 우선 손실 충당, 모태펀드 지분에 대한 콜옵션(살 수 있는 권리) 부여 등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세제 측면에선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인수합병(M&A) 세액공제 확대를 통해 ‘창업→성장→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촉진한다.

벤처 투자에 민간 자금이 더 많이 흘러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유인책도 내놓는다. 특히 디지털 바이오 분야 민간 투자가 활성화하도록 동물세포 배양·정제 기술 등 바이오 의약품 관련 핵심 기술을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해 최대 35%의 시설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세부 기술 선정 작업 등을 거쳐 이르면 8월께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을 개정한다는 게 정부 목표다.

보스턴과 한국 바이오 클러스터의 특징/출처=한국경제연구원

“한국판 클러스터, 허황된 꿈에 불과”

다만 일각에선 이 같은 정부의 보스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은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보스턴 클러스터의 핵심은 규제 철폐 내지 벤처 생태계 조성에 있는 게 아니라 MIT, 하버드 출신의 ‘인재’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은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의 성공 비결을 △밀집 △투자 △병원 협력의 세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보스턴 클러스터는 대학과 병원을 중심으로 ‘인재’와 ‘돈’, ‘기업’이 함께 움직이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바이오 생태계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곳엔 하버드와 MIT 등 생명과학분야 명문대와 매사추세츠종합병원 등 대형병원,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제약사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대학은 인재를 공급하고, 병원은 임상연구를 실시하며 이를 사업화하기 위해 기업들이 모여들며 자생적으로 바이오 생태계를 이룬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가 조성하려 시도하는 ‘한국형 클러스터’의 경우 연구중심병원 등 산업 생태계 참여자 및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 자금 조달 문제도 크다. 민간 자금을 유도하기 위해 유인책을 내놓겠다 한들 정부 의존도가 높은 현재 상황이 금세 해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M&A 시장이 미약한 탓에 투자회수 방법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반면 보스턴 클러스터의 경우 IPO(기업 공개)·M&A 등 다양한 투자회수 방법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민간 투자를 유치할 수 있어 벤처 생태계의 순환이 원활하다.

차라리 이제라도 보스턴 진출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도

보스턴 클러스터엔 글로벌 빅파마(Big Pharma, 제약 및 바이오의약 개발에 집중하는 기업으로서 이에 관한 매출액이 연간 150억 달러 이상인 기업) 20곳 중 18곳이 밀집되어 있고, 유입 또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메사추세츠주 캠브리지시(12만 명)와 보스턴시(68만 명)의 인구가 80만 명 정도인데, 그 중 바이오테크 연구개발(R&D) 인력 5만5,000여 명, 투자 및 경영 등 관련 인력 4만 명이다. 80만 명 중 약 10만 명 정도가 바이오테크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셈인데,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 전체를 둘러봐도 바이오 인력이 1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보스턴 클러스터를 세계 최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건 다양한 글로벌 빅파마와 무수한 바이오테크 스타트업들, 여기에 투자를 하는 벤처캐피탈(VC), MIT·하버드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연구소 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엔 실력 있는 빅파마가 모여 있으며, 이들을 설득할 만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인재도 모여 있다. 당장 인재가 없다 하더라도 주변 대학 및 연구소에서 충분히 인재가 배출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제약 요소가 너무 많다. 바이오 산업에 국한해 이야기하자면, 차라리 한국의 바이오 대기업과 금융사들이 지금이라도 LP(유한책임투자자)로서 보스턴으로 진출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기업 차원에서 해외 유학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쉽겠다. 결국 무작정 무언가를 벤치마킹해 지금부터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보단 기업·금융·대학이 손을 잡고 직접 해외에서 투자를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낫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