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發 ‘부동산 PF’ 불씨 차단 나선 금융당국, 부동산·증권 업계 ‘지각변동’ 예고

증권사 PF-ABCP→장기 대출 전환해 ‘만기 불일치’ 문제 해소 증권사 부실자산 조기상각 및 부동산 PF 관련 NCR 산정체계 전면 재검토 부동산 시장과 증권 업계 파장 예상, “지나치게 위험 회피적”이라는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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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자금조달 구조를 바꾸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증권사의 보증을 통해 단기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에서 증권사가 직접 장기대출을 해주는 구조로 전환해 업계 건전성을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같은 유동성 위기를 선제적으로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되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과 증권 업계에 적지 않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이 같은 정책이 지나치게 위험 회피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본격적인 정책 시행에 따라 금융시장 경색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증권사가 직접 만기 대출로 전환 유도, 부실채권도 신속한 상각 유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24일 부동산 PF 관련 증권사 리스크 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먼저 증권사가 보증한 단기 자산유동화증권(ABCP)를 해당 사업과 만기가 일치하는 대출로 전환을 유도해 만기 불일치 문제를 해소하기로 했다. 그간 부동산 사업장은 증권사 보증 아래 만기가 3개월 이하인 유동화증권으로 자금을 조달해 왔다. 이에 사업 기간보다 유동화증권의 만기가 짧아 차환이 어려운 경우가 자주 발생했던 만큼, 금융시장의 불안을 야기하는 문제점을 바로 잡겠다는 조치다.

금융당국은 증권사가 보증한 유동화증권을 기초자산과 만기가 일치하는 대출로 전환할 경우 대출에 적용되는 순자본비율(NCR) 위험값을 현행 100%에서 32%로 낮춰주기로 했다. 완화된 규제가 적용되면 증권사의 재무건전성 규제인 순자본비율(NCR)가 덜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 다만 이는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증권사가 이미 보증을 선 자산유동화증권에 한해 적용된다.

부실채권의 신속한 대손상각도 추진한다. 적립해 놓은 충당금을 바탕으로 증권사가 이미 추정손실로 분류한 자산에 대해 빠른 시일 내 당국에 상각을 신청하도록 하고, 매 분기 자산건전성 분류를 실시하도록 독려하겠다는 방침이다.

한시적 시장 리스크 경감 조치 시행

현재 증권 업계의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약 4.5조원(자기자본의 6%)으로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라 연체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증권 업계에 대한 건전성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당국은 기존의 기존 유동성 리스크 완화조치를 한시적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먼저 지난해 말부터 가동 중인 1.8조원 규모의 증권사 보증 PF-ABCP 매입프로 그램을 내년 2월까지 연장한다. 당초 5월 말 종료 예정이었으나 자금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한 효과와 5대 대표 증권사들의 연장 필요성 공감대가 형성됨에 따라 운영 기간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자사보증 PF-ABCP 직접 매입 관련 NCR 위험값 완화 조치도 올해 말까지 연장한다. 지난해 말 단기시장 경색 당시 증권사들이 위험값 관리를 위해 유동화 증권을 투매함에 따라 시장 금리가 급등하고 차환 여건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막는 효과가 컸다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한시적인 시장 리스크 경감 조치와는 별도로, 부동산 PF 관련 NCR 위험값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부동산 사업장의 실질 위험도나 변제순위, 증권사 규모별 실질 위험 감내 능력 등에 대한 고려가 없는 현행 제도가 증권사의 부동산 대출을 억누르는 대신 채무보증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처다. 이에 앞으로는 회사 규모에 따른 실질 리스크를 감안해 대출과 채무보증 사이의 규제차익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NCR 위험값 적용방식을 개선할 계획이다.

업계 지각변동 예고, 정책적 압박에 따른 자금경색 심화 우려도

금융당국의 이번 조치는 단기자금 시장의 경색으로 금리가 급상승하는 등의 불안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새로운 건전성 규제에 따라 증권가와 부동산 시장에 미칠 여파는 적지 않아 보인다.

먼저 증소형 증권사들이 부동산 사업 비중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자본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어 채무보증을 주력 사업으로 택한 증권사들은 직접 장기 대출을 할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증권 업계 전반에 부동산 관련 신용공여 규모도 감소할 여지가 있다.

위험값 산출 재검토에 따라 부동산 사업장의 양극화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준은 충족하지만 사업성이 우려되는 사업장은 정상화를 지원 받는 반면, 부실 사업장은 정리 절차를 밟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을 중심으로 높은 대출 금리를 활용한 사업장들의 정리 절차가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정부의 이번 조처가 자금 경색 등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킬 거란 지적도 나온다. 국내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PF 시장에서 단기 자금 롤오버(만기 연장)를 통한 자금조달은 수년간 이어온 관행”이라며 “갑작스러운 정책 도입이 금융시장의 경색을 더욱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책적 압박을 통한 연체율 관리보다는 우선 탈출구부터 만들어 주고 필요한 경우 추가 유동성까지 공급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며 “당장 제도 전반에 칼부터 들이미는 지금의 방식은 지나치게 위험 회피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