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에 학폭 이력 반영 확대한다는데, 가해자 ‘엄벌주의’만이 해답일까?

서울권 주요 대학들, 2025년부터 대입 전형에 ‘학폭’ 반영한다 정순신 子 학폭 파급력 커, 가해자 엄벌주의 목소리 ↑ 2차 가해 생산하는 엄벌주의 보다는 피해자 중심의 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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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학년도부터 고려대와 연세대 등 서울권 주요 대학들이 학교폭력 조치 사항을 대입 ‘수능 위주 전형’과 ‘학교부 교과 전형’에 반영키로 했다. 2025학년도 입시에선 대학마다 ‘자율적 반영’으로 그치지만, 2026학년도엔 ‘학생부 위주’, ‘논술’, ‘실기’, ‘수능 전형’에도 모두 학교폭력 조치사항을 필수 반영하게 된다. 특히 ‘학교운동부 폭력근절 및 스포츠 인권보호 체계 개선 방안’에 따라 2025학년도부터 체육특기자 특별전형에선 학교폭력 조치사항이 필수적으로 반영된다.

2025학년도 입시부터 학폭 조치사항 반영 범위 넓힌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은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국 4년제 대학 196곳의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고려대·건국대·서울대·한양대 등 전국 대학 21곳은 현 고2가 치르는 2025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수능 위주 전형’에 학폭 조치사항을 반영한다. 서울권에선 건국대·고려대·한양대·홍익대 등이, 수도권에선 가톨릭대·경기대·아신대 등이, 비수도권에선 경북대·부산대·전북대 등이 이 같은 조치사항을 반영키로 했다.

올해 대학 신입생이 치른 2023학년도 대입에선 감리교신학대, 서울대, 세종대, 진주교대, 홍익대 등 5곳 정도만이 수능 위주 전형에 학교폭력 조치사항을 반영했으나, 2025학년도 수능에서부턴 이것이 21곳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특히 ‘학교부 교과 전형’, ‘논술 전형’, ‘실기 전형’ 등 타 전형까지 합할 경우 학교폭력 조치사항 반영 대학은 총 100여 곳이 넘는다.

정순신 자녀가 쏘아 올린 작지 않은 공

그간 학교폭력 조치사항은 학생부 기재 사항을 정성평가하는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만 반영될 뿐 수능 성적이나 학생부 교과 성적을 주로 반영하는 ‘수능 위주 전형’과 ‘학생부 교과 전형’에선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월 학교폭력 가해자 정순신 변호사 아들이 ‘수능 위주 전형’으로 서울대에 진학한 사실이 드러나며 학교폭력의 반영 범위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당초 서울대의 경우 이미 ‘수능 위주 전형’에서 학교폭력 조치사항에 따라 감점을 실시하고 있었으나, 당시 정 변호사 아들의 합격 여부에 학교폭력 가해 여부가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순신 검사특권 진상조사단 TF’를 꾸려 윤석열 정부의 인사 검증 문제를 강하게 질타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정 변호사 아들이 쏘아 올린 공의 크기가 이렇게 커질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정 변호사 아들이 학교폭력을 자행했던 민족사관고등학교, 학교폭력에 따라 강제전학 후 학교폭력 기록을 삭제해 준 반포고등학교 등은 초기 자료 공개에 미온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에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까지 치솟았다.

이런 가운데 정 변호사 측은 자신의 아들이 피해자에게 저지른 학교폭력으로 인해 강제전학 처분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법률 지식 등을 총동원해 전방위 방어에 나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당시 정 변호사가 피해자의 문제를 주장하는 등 피해자 비난을 통해 논란을 방어하는 전략을 사용했음이 알려지며 국민들의 공분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정 변호사 아들이 쏘아 올린 작지 않은 공이 본격적으로 발아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다.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사진=넷플릭스

학교폭력 사실로 불이익, 꼭 받아야 할까?

다만 학교폭력 사실로 인해 정 변호사 아들이 앞으로 불이익을 받을지 여부는 미지수로 남았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측은 “만일 정 변호사 아들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지원할 경우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 기록에 의해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스쿨 입학 시 학부 때의 자료는 연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시민들은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학교폭력 가해를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건 물론 사회 진출(취업) 시까지 중대한 불이익을 줘야 하는데 이와 관련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학교폭력에 휘둘린 피해자는 평생에 걸친 정신 장애까지 겪을 수 있는 만큼 학교폭력 자체를 줄이기 위해 더욱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처벌 강화는 실효성 없는 2차 가해라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온다. 모든 범죄가 그렇듯 중징계를 내리는 것만으로는 학교폭력을 줄이기 힘든 데다 출신 학교나 성별까지 비공개로 하는 블라인드 채용이 정부 주도로 확대되는 판에 어떻게 가려낼 것이냐는 지적이다. 학교폭력이 대입과 직결될 경우 가해자의 불복 소송이나 피해자를 상대로 한 ‘맞신고’가 더 성행할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또 다른 일각에선 어차피 대학은 연구자를 길러내는 고등교육기관일 뿐 인성 교육기관이 아니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과거의 학교폭력 사실이 미래부가가치를 상승시킬 만한 인재를 길러내는 데 발목을 잡아선 국가 발전이 저해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견 엘리트주의 면모가 보이는 주장이긴 하나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엄벌주의는 당장 대책으로 내놓기엔 쉽다. 그러나 향후 벌어질 부작용과 한계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엄벌주의가 이어질 경우 맞고소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피해자의 회복과 학교폭력 예방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대책들이 엄벌주의에 밀려 빛이 바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학교폭력이 발생한 뒤 피해자가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할 만한 환경조차 제대로 구축해 내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의 고통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를 나누고, 피해에 의한 상처를 함께 치유해 나갈 수는 있다. 피해자 중심의 학교폭력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가해자에 대한 엄벌만을 강조한다면 진정 필요한 가치는 결국 놓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