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달러] ④ 각국의 달러 이탈 현상 가속화, 러-우 전쟁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

실질 비중 기준 미 달러의 국제적 지위 19% 하락했다는 금융 전문가 보고서 나와 주요국들의 달러화 이탈 현상 가속화 중, 유럽중앙은행 총재도 경고 전문가들, 빠른 시일 내에 기축통화 변경은 없을 것 다만 러-우 전쟁의 실질적인 피해자는 미국이라는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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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2월부터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 연방준비제도위원회(이하 ‘연준’)의 급속 긴축이 달러 이탈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전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 글로벌 화폐 전문가 출신인 스티븐 젠(Stephen Jen)은 유리존 캐피탈(Eurizon SLJ Capital Ltd.)를 통해 내놓은 보고서에서 달러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잃은 실질 비중 변화량의 2배를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잃었고, 특히 지난 2022년 2월부터 그 속도가 급격하게 가속화됐다는 주장을 내놨다.

달러 시대 종말은 미국이 이끌고 있다?

젠은 보고서에서 미국 달러가 지난 2022년 2월부터 올해까지 무려 7%의 비중을 상실했으며 자료 기준인 2004년 수치 대비 19%의 비중을 잃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유로는 최근 들어 국제 시장에서의 지위를 회복했고, 엔화와 위안화는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보고서에서 정의한 통화별 실질 비중 변화량(‘Real’ change in shares)은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별 보유량, 국제 거래에서 활용되는 비중 등의 총합이다.

젠은 모건 스탠리 재직 시절 ‘달러 스마일 이론(Dollar Smile Theory)’를 주장하며 미국 경제가 매우 강하거나 매우 약한 상황 양쪽 모두에서 미 달러에 대한 금융시장 수요가 폭증한다는 이론을 내놓은 바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 성장이 있는 경우에만 특정 화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지만 미 달러의 경우는 안전자산, 거래용 화폐라는 상징적인 지위가 있기 때문에 미국 경제가 위험해질수록 오히려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미국 경제가 위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 중앙은행들이 미 달러에 대한 수요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되레 낮추고 있으며, 주원인은 러시아, 중국 등을 중심으로 한 ‘달러 독재’에 대한 반발 세력들의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지위가 향상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사진=SheThePeople

위안 결제 환승 늘고, 달러 비관론은 확산

방글라데시는 지난 17일(현지 시간) 정부 공식 발표를 통해 러시아에 지불할 건설대금을 위안화로 지불하겠다고 선언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방글라데시는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인 로사톰과 함께 126억5,000만 달러(약 16조6,879억원) 규모의 원전을 건설 중이며, 이 가운데 90%를 러시아로부터 빌린 차관으로 충당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제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된 탓에 적절한 지급 방법을 찾다 위안화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올 3월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가 석유 결제에 위안화를 받을 수도 있다고 선언한 이래 위안화 결제 수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중국과 브라질은 두 나라 교육에 달러 대신 위안화와 헤알화를 쓰겠다고 발표했고, 아랍에미리트도 액화천연가스 대금을 위안화로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란은 자국 화폐인 디나르로 석유 결제 대금을 받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11년까지 국제통화기금(IMF) 수장을 거친 후 현재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17일(현지 시간) 뉴욕에서 열린 미국외교협회 행사에서 달러화 지위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글로벌 공급망 탄력성이 줄면서 불안이 더 커질 수 있고, 지정학 긴장이 계속 고조되면 다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면서 “미국 달러가 세계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당연히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쟁과 이자율 탓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평가도

금융 전문가들은 지난 2022년 내내 금리가 빠르게 인상되며 각국에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데다, 주요 에너지 자원 결제에 위안화, 루블화 등의 타국 화폐가 쓰이게 되면서 달러 패권이 붕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달러화의 약점이 노출되면서 보완재를 찾는 과정이지 근본적인 기축통화 변화를 단기간에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상하이 동아시아연구소 바오청커 부소장은 타이완 중앙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위안화 굴기는 달러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달러의 결점을 보완하는 것”이며 “미국이 자본의 우위를 이용, 자신들에게 유리한 경제 구도를 만드는 데 대한 다른 나라들의 불만이 있다”는 설명을 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미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고, 개발도상국의 위치에 있으며 금융제도도 미흡하다”며 “위안화가 지나치게 빨리 글로벌 화폐가 되는 것은 중국의 발전에도 이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들의 주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리존 캐피탈의 스티븐 젠도 보고서 말미에 위안화로 대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불만 많은 일부 국가들의 반발일 뿐, 현실적으로 달러화 대체가 단숨에 일어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되고 이자율이 하락세로 돌아서면 각국 중앙은행들이 다시 달러 보유고를 회복시킬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이 잃은 것

외교가 전문가들은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수십 만의 병력을 잃고 무기 소비 등에 막대한 재정지출을 겪은 데다 푸틴 정권의 안정성에 위협을 받은 것 등이 손실인 반면, 미국은 세계 패권국의 지위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각국 정부에 심어준 점이 가장 큰 치명타라는 설명을 내놓는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을 때도 나타나지 않았던 달러 이탈 현상이 러시아와 사실상 대리전을 치르면서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로 이어지는 에너지 중심축과의 거리가 멀어졌고, 브릭스(BRICS) 등의 주요 개도국에 대한 기축통화 지위에도 악영향을 입었다는 것이다.

이어 2000년 유로화 출범 때도 다원화 화폐 체제가 구축되지 않아 유럽중앙은행이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으나 이번 전쟁으로 위안화의 몸집만 커졌다는 설명도 나왔다. 아울러 세계가 더 이상 달러에 의존하지 않는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함께 나왔다.